•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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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님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님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주님의 오른 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신학은 넓은 의미에서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구원을 본다. 예컨대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이다.
성서신학은 성서의 부문과 전체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을 한다. 그것은 교회의 설교, 교육, 예배와 활동의 기반이 된다.
역사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의 여러 기간 동안에 교회가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해석한 방식,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실천해 왔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조직신학, 교의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내용을 해명하고 자기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에 관한 교회의 언어로 검증하는 일을 담당한다.
실천신학은 교회와 그 성원들의 실천의 규범과 원칙에 관한 연구이다. 이것은 교회론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교회의 존재 이유를 구현하기 위하여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이 본질적이며 필수적이며 마땅한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 예는 설교학, 예배학, 교육학, 목회학 등을 통해서 알게 한다.
성서 창세기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이 첫말은 모든 피조물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피조물이 무로 향하는 경향성을 가지며 그로 인해 늘 비존재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존재를 받지 않으면 모든 피조물은 그대로 비존재인 채로 남는다. 피조물이 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존재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께 끊임없이 참여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조물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목소리에 피조물은 응답해야 하고, 이를 통해 완전한 창조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원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하나님의 창조물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 즉 창조 이전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무로 향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경향성은 미래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가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고, 과거는 이미 가고 없는 것이며, 현재는 찰나에 불과하기에 다만 이 현재로 계속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시간의 흐름은 비존재로의 흐름이다. 여기에 시간에 대해 이렇게 이해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관적 시간론을 주장한다. 시간은 인간 영혼에 의해 과거는 기억함으로, 현재는 목격함으로, 미래는 기다림으로 체험되며, 영혼의 연장을 통해 측정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은 창조 이전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가 무시간적 영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안에는 무시간적 영원과 그 안에서 이루어진 6일간의 창조 간의 모순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6일간의 창조 이야기와 한 순간에 이루어진 창조 이야기의 조화 문제가 들어있음을 알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어떠한 간격도 없이 어떠한 시간적 지속도 없이 동시에 이룬 창조를 가리키는 첫 창조와 끊임없이 피조물에게 존재를 부여시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통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둘을 조화시키기 위해 창조 때에 미리 형성되었던 창조물들이 가지고 있는 존재 방식인 종자(種子=seed)적 이성 개념을 도입한다.
하나님께서 종자적 이성으로 첫 창조 때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나중에 통치로서 종자적 이성을 다스린다고 말한 점을 유의한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하나님의 영원성은 시간의 창조자요 지배자로서 당연히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간의 과정으로부터의 구별되고 자유로우며 절대적 주권으로 이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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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시간의 구원을 보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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