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한국교회 분열과 분쟁 어디에서 오는가?
2015/12/19 11:1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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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서 벌어지는 타락 현상 교회론 부재에서 비롯
개혁교회가 도덕성을 상실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


요즘 한국교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면, 대관절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교회’란 무언가? 라는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교회는 그것이 어디에 무슨 이름의 간판을 달고 있던지 교회론을 무색케 하는 분열과 분쟁이 심화되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라는 보편적 교회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개교회주의가 만연하며, 마치 세속적 사업체를 운영하듯이 은퇴하는 목회자가 잉여금을 남겨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가는 따위가 무슨 관행처럼 버젓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세상의 인본주의적 세속적 종교기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더욱이 교회는 세상의 여타 종교기관과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행태는, 개신교 목회자들이 잘못된 교회라고 비난하는 로마 가톨릭이나 그리스 정교회를 비롯한 구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성공회나 루터교 등 다른 개신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타락 현상은 개혁교회가 도덕성을 상실하면 어떤 형태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극심한 연합단체들의 분열과 분쟁
한국 기독교에는 교단만 수백 개로 분열해 있는 것이 아니다. 연합단체나 기관들도 거의 날마다 분열해, 자고 나면 따로 간판이 하나씩 늘어난다. 무슨무슨 기독교연합회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도 어렵고, ‘한국’이니, ‘대한’이니 하는 수식어가 붙은 기독교총연합회도 수십 개에 이른다. ‘대한예수교장로회’만 모인 연합회만 해도 4-5개나 된다. 똑같은 이름과 비슷한 이름이 너무 많아 기자들도 헷갈린다. 그래서 그 단체의  정체를 알려면 대표자가 누구인가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대표자의 이름을 들어도 생소할 때가 많다. 그런 단체에서 교계를 아우르는 지도력이 나올리가 만무하다. 다만 몇 사람이 ‘거룩한 기구’를 만들어서 밥벌이를 하고 행세를 하기 위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교단과 연합단체들의 분열은 결국 사회에 대한 교회의 지도력만 약화시킬 뿐 아니라, 민족복음화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의 힘을 약화시켜 세상에 비웃음거리로 만든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미국의 교파주의 교회를 물러받았으므로 연합과 일치라는 에큐메니칼 없이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초기 선교사 시대부터 선교사공의회 등 에큐메니칼 운동이 이어져 온 것이다. 그 결과 하나의 한국교회가 되어 성경도 번역하고, 찬송가도 통합을 이루었으며, 서회나 방송국 등 선교기관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갈갈이 찢어져 아무런 구실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다 입은 살아서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는 않는다.

개교회주의의 폐단
처음부터 기독교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una sancta catholica ecclesia)이다. 이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 밖에 있는 것은 이단이다. 이 하나의 보편적 교회 안에 가시적 교회(可視的 敎會)와 불가시적 교회(不可視的 敎會)가 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몸으로 하는 지교회(支敎會))가 있을 뿐, 개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 그 양심에 따라 교파와 교단의 존재만 인정될 뿐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쩌다가 개교회주의가 만연하다. 심지어 특정 교파와 교단 안에 있으면서도 교회는 개교회주의로 운영된다. 이런 형태는 우리사회에 있는 일명 ‘무당 절간’ 운영과 같은 것이다. 흔히 무당 절간이라고 부르는 종교기관은 그 외형적 형태는 불교의 사찰과 유사하다. 간판도 불교적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불교의 종교적 가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속적 가치를 따르는 것이다. 점과 굿이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그 절간을 자녀에게 상속하기도 하고 팔기도 한다.
한국 기독교 안에 널리퍼져 있는 개교회주의가 바로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복음이라는 종교적 상품을 내세워 신도들을 모으고, 거기서 나오는 재화로 먹고 살다가 그 교회를 팔기도 하고 상속도 한다. 그런데 이런 교회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교회들이 있을 땐 한국교회 전체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 현대 한국교회가 왜곡된 배경에는 이런 개교회주의적 대형교회들이 크게 영향을 끼쳐 왔다.

목회자 거액 퇴직금의 문제
이건 정말 심각한 타락 현상이다.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깊은 불신에 쌓일 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목회자는 일생을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위한 교회의 봉사자로 부름 받았다. 당연히 교회에서 나오는 것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교회가 주는 것이 불만족 하면 직업을 바꾸면 된다. 목회는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것이다.
개신교 목회자들로부터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신부나 힘 있는 주교가 수십억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받아간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관절 목회자가 거액의 퇴직금을 받아가는 것이 성경적 기독교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성경은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가 도(度)에 넘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아가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건 순전히 자신이 목회자(목자)가 아니라 한 종교집단의 ‘삯꾼’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교회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 독립시키고 달랑 두 부부만 남았는데, 죽을 때까지 교회가 생활비를 지원하면 되었지, 무엇이 크게 모자라 수십억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챙겨가는 것인지, 이런 교회가 세상에 한국교회 외에 어디 또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교단 안에서도 목회자 간 부익부 비익빈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건강성을 회복하기 어렵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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