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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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 한글판 창세기 25:7-8에는 아브라함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25:7-8에는 아브라함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여기서 개역성경은 아브라함이 죽어서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번역하고 있다. “열조라는 말은 조상들이란 말인데 이 말은 분명 사람은 죽음으로 그의 인생이 끝이 아니고 사후의 세계 있음을 암시하며, 아브라함이 죽어서 가는 곳은 열조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마치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영들이 거처하는 곳을 의미하는 말같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살았던 햇수의 날들로, 일백 칠십 오년이다. 아브라함은 늙어 아름다운 노년을 누리다가 마지막 숨을 쉬고 죽어, 그의 백성에게 합류하였다.”
 
한 사람의 마지막 생애를 기록하며, 그의 살았던 연수를 언급하고, “마지막 숨을 쉬고 죽어 그의 백성에게 합류하였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바이익바 바아야멧 바아에아셉 엘-암마이브” (וימעלא ףסאיו תמיו עוגיו, 마지막 숨을 쉬고 죽어 그의 백성에게 합류하였다.)는 표현은 이곳 말고도 이스마엘(25:17), 이삭(25:29), 그리고 야곱(49:33) 등에 사용되고 있다. 오경에서 사람의 죽음을 기술하는 정형화된 양식의 일종인 것 같다. 문제는 이 표현 가운데 열조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히브리어 ”(מע)이라는 말은 백성”(people)이라는 의미이다. “백성과 조상들을 의미하는 열조라는 의미는 차이가 많다. 백성이라는 말은 혈족 관계를 넘은 보다 계약적 의미를 가진 말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백성은 분명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말일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마지막 숨을 쉬고 죽어서 그의 백성에게로 갔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는 어떤 죽음의 세계라는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백성에게로 가서 그의 백성의 일원으로 합류한 것이다. 여기서 합류하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 데 히브리어 아삽”(ףסא)이라는 말은 모으다”(to gather together)의 수동형이다. 그래서 모아진다”(to be gathered together)라는 의미이다. 좀더 매끄러운 한국어로는 합류하다는 표현이 더 좋을 듯싶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죽어서 그의 백성에게 합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들판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는 데 이 들판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것으로, 거기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장사되었다.”(25:10). 그런데 여러 역본들은 이 경우 아브라함과 사라가 합장되었다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합장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매장 습관에 따르면 한 관에 죽은 사람의 뼈를 같이 넣어 한 봉오리의 묘를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합장은 죽은 자의 시신의 살이 다 썪어서 뼈만 남을 때 적어도 3-4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옛날 풍습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굴에 여러 개의 관을 넣는 것이다. 따라서 한글 성경 표준 새번역에서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와 합장되었다고 번역하는 것은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표현처럼 한국적이다. 또한 히브리어 원문이 꼭 합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거기에 아브라함이 장사되었다. 그리고 그의 사래()”이다. 합장을 의미하는 함께”(with)라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이 경우는 개역성경이나 바른성경의 번역, “거기에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장사되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
우리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흙으로부터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생에서 아무리 많은 부를 쌓고, 자식들을 잘 키워도 그것들을 데리고 가거나 가져갈 수는 없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우리 조상들은 부모가 자기를 낳아 주었기 때문에 자기 조상들에게로 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믿는자들은 그의 백성,” 곧 여호와와 그의 백성에게로 간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모두 하나가 되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요한 17:21).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님과 상호동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도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신비한 연합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성령께서 하실 일이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21:3). 우리는 이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장막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호동거(Mutual Indwelling)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궁극적인 소망은 열조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다. 다윗이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의 궁전도 궁극적으로 지상의 성전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장막이었을 것이다(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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