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기독교인으로서의 윤동주에 대한 조명과 재평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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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하늘과 별과 시>
민족시나 항일시라고 하면 으레 억세고 강하며 선동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윤동주의 시에는 전혀 그런 구석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현실의 어둠과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굳은 심지가 느껴진다. 윤동주 시는 어렵지 않고 길지도 않지만 읽다 보면 마음속에서 뭔가 조용한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시를 쓸 때 자신의 허물에 대한 부끄러움과 그에 대한 고백을 늘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독립운동가나 민족 사상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서정시인이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은 별과 하늘과 꽃과 십자가였다.
시인 윤동주는 식민지 시대의 지성인으로 마땅히 감당해야할 고뇌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맑은 영혼과 깨끗한 시심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수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잠시 죽은 것 같았던 그 죽음이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고 다시 시로 부활하여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로 살아 오늘날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윤동주의 시 <서시>
윤동주 시세계의 출발은 철저한 자아성찰에서 비롯되며 그 결과는 곧 부끄러움을 낳게 된다. 이 부끄러움은 근원적으로 시인의 심성에서 여과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삶을 보여주는 대표작이 서시다. 널리 애송되어 온 <서시>는 그러한 시의식에서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전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서 그가 의도한 ‘하늘’이 막연한 자연의 하늘이 아니라 ‘창조주’의 관점이라는 기독교적 양면성을 지닌다. ‘하늘을 우러러’는 것은 성경의 여러 장면에서 볼 수 있다. 신앙이란 땅을 바라보던 눈을 하늘을 향하여 우러러는 행위이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맹세 하였으나 현실적 자아는 늘 부족한 것이기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순결한 영혼의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과 민족에 대한 경외사상으로 최고의 신앙적 고백이다.
윤동주 시는 자신의 허물을 고백함으로써 부끄러움의 미학을 확립했다. 이런 시인은 드물다. 그래서 독보적이다. 민족의식과 기독교 신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차별점이다. 부끄러움의 미학이란 그의 시가 나타내는 참회의 고백은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허물을 인식하고 고백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윤동주만이 가진 시의 독창성이다.

윤동주의 시 <또 다른 고향>
윤동주는 자연을 사랑했고, 그의 시 가운데 많은 것은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만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한 것은 아니었다.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조국의 현실을 기초로 하고 있었으며, 별 하나 나뭇잎 하나에도 조국을 사랑하는 뜨거운 피가 맺혀 있었다. 그의 시 <또 다른 고향>은 밤 새워 어둠을 향해 짖는 개와 그렇게 살다 죽어간 백골이 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말하던 ‘또 다른 고향’은 그 시대를 살던 모두가 꿈꾸던 해방된 조국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아니면 영원한 천국이었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었다 /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분다/ 어둠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믐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또 다른 고향>
이런 청년의 열정과 순수함이 고뇌로, 방황으로, 회의와 좌절로 겹쳐지며 그의 시는 아름다운 서정시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시 <십자가>
그러면 윤동주 시에서 그의 신앙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윤동주에게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고뇌가 탁월하게 표현된 작품으로는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를 보면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의 제물이 되고자 했던 그의 내면을 보여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한 속죄의 희생양이 되었다면, 시적 화자는 민족을 위한 속죄의 희생양이 되고자 한다. 자신에게도 운명적인 “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자신의 생명의 상징인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민족의 구원을 위한 제단에 바치겠다고 결심하며 비장한 심정으로 기도의 고백을 하고 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에서처럼 그는 암담한 시대를 향한 민족적 제물, 기독교적 순교의 결연한 선언을 하고 있다.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의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결국 그는 암담한 시대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않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 것이다. 이렇듯 시에 사용된 십자가는 기독교적 상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것은 민족의 고통을 순교자적 희생을 통해 도달하고자 했던 시인의 경지를 의미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며 순교의 표식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참회록>,<십자가>,<자화상> 등 그의 시세계는 자신에 대한 평가의 잣대를 주관적인 것에 두지 않았다. ‘하늘’로 상징되는 창조주의 뜻,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놓은 ‘그리스도’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본 것이다.

윤동주의 시 <쉽게 씌여진 시>
윤동주의 시는 무엇보다도 맑고 깨끗하다. 꼭 투명한 유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잡된 생각이 없는 심성을 가질 때 비로소 시가 생겨날 수 있듯이, 윤동주의 시는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더욱 그의 시는 언어의 유희나 기교를 첨가하지 않았다. 마음속의 영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쉽게 씌여진 시>는 그런 점에서 그의 시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라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 한줄 시를 적어볼까/ 중략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또 다른 고향>
이러한 시심은 끝내 그를 현실에 굴복하여 그 안에 안주하거나 외면하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여기에 시인의 깊은 갈등과 고뇌가 있다.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시인 윤동주는 그 길이 험한 가시밭길임을 알면서도 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마땅히 그가 가지 않으면 안될 길을 갔고, 그래서 그의 치열한 시정신은 바로 여기서 빛을 발하게 된다.

시가 무엇인가?
금년 2월은 그의 서거 71주년이자 2017년이면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2013년부터 중국은 이 윤동주 생가를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돈 10억을 들여 확 뜯어고쳤다. 도로에서 생가에 이르는 흙길 바닥은 대리석으로 고급화(?)했고 명동교회 건물 옆에 있던 십자가는 아예 없애버렸다. 생가 입구에는 가로 4미터 세로 2미터 크기의 경계석을 세웠는데 그 경계석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새겨넣었다. 중국인 중에는 독립운동을 하다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죽은 윤동주 시인 같은 훌륭한 시인이 없으므로 윤동주 시인이 탐났던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을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으로서 중국에 애국한 시인’이라고 우기고 싶었을 것이라면서 생가 내부에 늘어선 시비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중국어로 씌어 있어 마치 윤동주 시인이 중국어로 시를 쓴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고 있다. 자칫 우리의 민족시인 윤동주가 중국인으로 굳혀질 것 같아 안타깝다.
일제말기, 일본 후구오카 감옥에서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한 윤동주, 일제말기의 암흑기에 대표적 민족저항시인으로 손꼽는데는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이 전체 인구의 1%도 안되는 일본에서 이미 몇 해 전 '크리스천 윤동주'라는 제목으로 시집이 나온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윤동주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미비한 편이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 젊은 시인 윤동주와 해방문학사의 첫 발걸음을 더딘 시인 윤동주에 대한 조명과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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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시인 윤동주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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