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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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우리 마을과의 거리는 약 2km가 넘어서 어린아이들이 걸어서 다니기엔 좀 먼 거리였다.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쉬려고 하면 '윗동네 아저씨 댁에 심부름 다녀오너라! 불 좀 때라! 동생을 업어 줘라!' 게다가 따가운 어느 여름날 창고 안에 있는 호미를 들고 먼 선산 밑에 있는 참깨 밭을 매러 가자며 앞장서시는 아버지의 명령에 동생과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따라나섰다. 큰 냇물을 두 번이나 건너 참깨밭에 도착했다.
아버지께서는 참깨 대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해 잡초는 뽑고 호미로 흙을 수북히 쌓아 올려준 다음 꾹꾹 눌러줘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복(福)이 아닌 북을 주는 것이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눈썰미가 있어서 동생 수정이와 나는 꽤나 일을 잘해서 덕분에 팔뚝이 굵어져서 창피한 적이 많았다.
우리는 부농이라서 일꾼도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었건만 늘 일손이 모자랐다. 왜 그런 집안에 태어나게 하셨을까? 일도 안하고 우리 집 마당에 와서 맘껏 뛰노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식물에 북을 주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북을 준 자에게 복(福)으로 갚아준다. 자연은 정직하다.
언젠가 미용실에서 할머니가 하시는 얘기를 들었다. 친한 친구가 가난해서 수업료를 못내 선생님께 야단 맞는 게 불쌍해서 대신 수업료를 내주곤 나중에 아버지께 혼났다고 한다. 그 친구는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고 하기에 “그럼 요즘도 연락하고 지내시겠네요?”라고 했더니 “에이, 그럼 인간이게?” 라며 몹시 서운해 하셨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자신의 목표를 이룬 후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슬프시게 하는 것을 보면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이다. 과거에 잘 나갈 때는 영항력이 있어서 주위사람들과 후배들에게 북을 주는 역활을 했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 도대체 이게 뭡니까? 영의 아버지나 육의 아버지는 왜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무슨 아버지들이 그렇습니까?” '라고 따졌다.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라 하신 길을 왔는데 광야와 사막의 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체험 했으면서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나였다. 인도 하시는 대로 열심히 준비하며 달려왔는데 허락치도 않으시고 길은 막혀 앞이 보이질 않아 답답했다.
구정 전날은 주일 이었는데 습관대로 예배 전에 하나님께 기도 편지를 쓰고 설교를 통해 주님의 음성을 들려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적었다. (삼하12;1~15/ 제목;당신이 그 사람이라) 나단 선지자가 다윗(나)을 향해 회개케 하는 내용이었다. '제가 바로 그 죄인입니다' 라고 하나님의 정한 시기에 다윗이 뜨거운 눈물로 회개를 했을 때 기뻐하셨다. 그리고  U턴을 하여 일평생 겸손한 삶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말씀이었다. 왜 하필 대한민국에, 하필 그런 집안에 태어나 힘들게 하셨을까? 또 평신도인 주제에 바쁘고 피곤하고 관심도 없는 목회자를 대상으로 감히 강의를 하게 하셨고 안 될 때 포기하고 방송으로 돌아가지 못한 나자신에게도 불만이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다 내가 한 거야'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려지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구정 전날 밤 우연히 '예수 우리 왕이여' 38장 찬양을 듣는 순간 또 '내가 한 거야' 라고 하셔서 '네 그렇군요. 저의 배후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제가 잘못 했습니다. 교만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라고 울며 불며 회개를 했다. '이제 제발 남 탓 좀 그만해! 남들에게 북을 주고 잘 해줬던 것도 내가 능력을 줘서 한 거야' 라고 하셨다. '네 맞습니다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더 낮아지고 겸손하여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예쁘게 살겠습니다.' 라는 회개를 하고 단잠을 잤다.
구정날 아침 생전 처음 보는 찬란한 햇살이 너무나 아름다워 세상이 달라 보였다. 몸도 마음도 얼마나 가벼운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명절만 되면 그동안 힘들고 밉고 섭섭한 일들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솔직히 즐겁진 않았다. 그런데 미운 생각이 다 사라지고 모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냈다. 결국 복(福)을 나누고 북을 준 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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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을 주다 - 성우 정 부 용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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