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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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구원한 용사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을 그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기드온의 출현은 앞으로 이스라엘에 왕정의 출현을 예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기드온이 삼백 명의 병사를 데리고 야간 기습작전을 벌여 미디안 병사들을 물리치고 통쾌한 승리를 얻는 사건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짜릿한 승리감을 맛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 목회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세상과 맞서 싸울 “기드온의 삼백 용사”를 양성하려고 한다. 복음의 정예부대를 기드온의 삼백 용사에 비유하는 것이다. 다 좋은 의도이고, 또한 그러한 복음의 정예부대는 필요하다. 할 수 만 있다면 모든 교회가 그러한 복음의 정예부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을 대적하기 위하여 그의 군사로 선발한 삼백명이 과연 “용사”였는가 하는 점이다. 용사란 말은 전쟁에 능한 장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를 용사라고 부르고(삼하 17:8), 사울과 요나단을 용사라고 부른다(삼하 1:25). 여호수아서 10:2에는 기브온 거민을 용사라고 칭한다. 개역성경에서 “용사”라고 번역하는 히브리어 "기볼"(רובג)이 라는 말은 “용맹스러운 사람”(mighty, vigorous man)을 뜻한다. 형용사로 사자를 가르켜 용맹스럽다(רובג)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전쟁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 히브리어 “기볼”은 “전쟁 영웅” (military hero)나 “전쟁의 제 일인자”(champion of war)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전장에서의 장수나, 왕을 호위하고 따르는 장군들을 가르키는 말이다.

따라서 기드온 본문에서는 기드온이 선발하여 전장에 데리고 나간 300명에 대하여 “용사”라는 말은 쓴 적이 없다. 다만 기드온에 대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큰 용사여”(רובג   ליחה , 삿 6:12)라고 부른다. 삼백명에 대해서는 다만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자, 삼백”이라는 말은 쓰고 있다. 본문을 살펴보면 기드온이 벌인 전쟁은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부르면서 시작되며, 이 전쟁은 여호와의 주도로 치러진 “여호와의 전쟁”이다. 흔히들 성전(the holy war)이라고 말하는 전쟁이다. 여호와 전쟁은 여호와께서 직접 그의 백성들의 전쟁에 참여하여 그의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고 승리하시는 전쟁이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천군을 거느리시고, 지상에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의 군대로 거느리신다. 전쟁이 일어나면 여호와께서는 비나 우박이나 천체의 변화를 통하여 그의 대적을 물리치시고, 그의 백성이 추격하여 전리품을 탈취하게 하신다. 따라서 여호와 전쟁에서 병사들이 많아야 할 필요가 없다. 적은 병사들로 큰 군대를 무찔러야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강하심이 드러날 것이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위하여 싸워 승리하신 하나님을 더욱 믿을 것이다. 그래서 성전이나 여호와 전쟁의 대표적인 특징은 참전하는 병사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줄인 병사들도 꼭 정예부대나 특수부대여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오합지졸일수록 하나님의 영광은 더 들어난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에게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할까 함이니라”(삿 7:2)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병사의 수를 줄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만 이천 명은 돌아가고, 일만 명이 남았지만 그것도 많기 때문에 더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친히 자신이 기드온과 함께 전장에 나갈 자를 선발하겠으니 그들을 데리고 물가로 내려가라고 명하시며,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삿 7:4)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삼백명을 마치 대단한 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정예부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시험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차라프"(ףרצ)라는 말을 쓰는데 이는 물론 “시험하다”(test)는 뜻도 있지만 “골라내다”(smelt, refine)의 뜻도 있다. 이는 금을 제련할 때 쓰는 말로 광석을 부수어 금과 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말의 뜻은 자격이 있나 없나를 “시험하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분류하고 고르다는 뜻에 더 가깝다.

여호와께서는 숫자를 줄이기 위하여 일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와서 물을 마시게 하는 데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삿 7:5), 혹은 “물을 핥아 먹는 자” 삼백명을 남기고 9,700 명을 돌려 보내신다. 여기서 물을 “핥아 먹는자”(קקל, 핥아 먹다)  와 “사타”(רובג חתש, 마시다)를 구별한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물을 “마시는 자”이다. 개는 물을 핥아 먹는다. 그래서 물을 “핥아 먹는 자”를 “개 같은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발해주신 300명은 사실은 정예부대 라기 보다는 물도 사람처럼 제대로 못 마시고 개처럼 마시는 자들이라고 해야 옳다. 만일 이들이 정예부대라면 미디안과 전쟁을 할 때에 용맹을 떨치며 미디안 병사들과의 전투에 몇 사람을 죽였다는 구체적인 전과나 실적이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한 일이라곤 고작 횃불을 항아리에 숨겨가지고 가서 “기드온을 위하라. 여호와를 위하라”고 외친 것 밖에 없다. 칼이나 창 한번 써보지 못했다. 엄밀하게 전쟁을 위한 전투요원이라고 볼 수 없는 자들이다.

용사 요나단의 말대로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한 것이다”(삼상 14:6).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7).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불러서 원하시는대로 불러서 쓰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능력이 부족하면 능력을 주시고,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주셔서 그가 원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기드온을 따르는 삼백인들은 용사가 될 수 없고, 용사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물 한모금도 사람답게 마시지 못하고 개처럼 핥아먹는 조무래기들을 그의 군사로 쓰셔서 친히 승리를 거두신 것이다. 기드온의 삼백 명을 높일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과소평가 될 것이고, 이 삼백명의 역할을 강조할수록 하나님의 영광은 빛이 바랠 것이다. 기드온의 삼백명을 결코 용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기드온을 따르는 삼백 명을 용사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승리했다는 말을 못하게 하기 위하여 상식 이하로 병력을 감축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계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스럽게 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꼐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시다.(눅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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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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