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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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이던가, 한 교회에서 전국적으로 교역자를 불러 모으고서 성회를 열었는데, 초청된 연사들이 거의 신학교 교수들이었다. 한 교수가 강연 중에 너무나 감격해서 눈시울이 벌게지는 가운데에, 칼빈 이후 500년 역사에 이렇게 성과적인 교회가 선 일이 없었다고 하자, 경청하던 청중들이 숙연해지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 날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라 하였는데, 칼빈이 세우려던 교회가 과연 오늘 우리 같은 한국교회일까?
칼빈은 그 많은 강요와 설교와 실천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나, 그도 다 말하지를 못하고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킬빈은 종교개혁 오백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를 보고서, 하늘에서 통곡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한국교회의 허물들과, 하나님나라의 통치에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는 교회들을 보고서도 그리하겠지만, 자신이 세우려 했던 교회가 이렇게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노출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질 못했을 것이리라. 가톨릭을 오염시킨 바이러스에, 이제는 개혁교회의 교단과 교단들, 교회와 교회들에게 마치 구제역 같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칼빈이 태어난 지 오백년을 넘겼기에, 하늘에서는 여러 사도들과 주님과의 사귐에서, 개혁자들의 복음의 내용과 질, 그리고 주장들은 이미 바르게 조율되고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곳은 빛이 찬란하여 흑암이 없기 때문이다. 칼빈도 주님과 함께 있기에 온전하여 졌을 것이지만, 이 땅에 서있는 지금 이 교회들은 어찌 할 것인가?
종교개혁 오백주년 기념행사들이 학자들이나 학술 연구소, 교단마다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어서 다소 고무적이긴 해도, 지난 한국교회의 백주년 행사를 돌이켜 보면, 외형이나 내용, 교회의 질량이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외모가 내용을 결정짓는다고들 하는데, 세인들이 볼 적에도 한국교회의 외형이 바뀌질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사람들의 기대를 안고서 예루살렘에 오르고 있었다. 제자들이 어린 나귀새끼를 구해 와서, 에쿠스 대신 포니를 탄 격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때 아닌 봄철이었는데도, 종려나무 가지를 예수의 행로에 카펫처럼 깔고,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면서 모두다 합창으로 칭송하였다. 이 행렬을 예측하고 있었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은 두려움마저 엄몰하였다. 예수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에 다시 세우리라’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주전180년에, 제사장들 일부가 쿰란지역으로 떠나갔고, 일부는 이미 이집트로 가서 헬라어로 된, 소위 ‘칠십인경’을 번역한 지성적인 그룹들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울이나 히브리서 기자도 이 칠십인 경으로 학습된 이들이다. 당시 흩어져서 살던 저들이 주장하는 성전이란, 이미 건물과 장소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들어가,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예배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백성, 바로 그 공동체 자체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만큼 성전 개념이 건물에서 공동체로 바뀌고 있었던 터이라서, 마치 예루살렘 성전은 누구라도 밀기만 하면 넘어갈 듯하였다. 헤롯 같은 정치인도 예루살렘 건축과 증축에 돈을 퍼부으면서, 그 자신이 스스로를 ‘성전을 짓는 자’란 의미로서, 메시아 명칭을 도용하고 있었던 터이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세우려 하신 새로운 성전이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을 의존하고 순종하는, 예수께서 우릴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 같이, 서로가 이웃을 사랑하는 공동체이다. 예수의 공동체란, 제도나 계급이나 인종차별을 뛰어넘은, 모든 인류에게 열려진 공동체로서, 예수의 복음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의 행렬이 예루살렘으로 돌진하자, 이를 두렵게 느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그룹은, 온갖 계략과 술수로서, 예수를 약식 재판과 십자가 처형에 넘겨, 예수운동을 종식시킨 듯 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다시 부활하여서, 그에게 나아오는 자는 누구에게든지, 자신의 희생을 통한 사죄의 은총과 의로움, 십자가의 피로서 새로이 계약된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부여한 것이다. 예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성전은, 그의 사도들이 선포한대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의롭다함을 얻은 새로운 백성으로 이뤄진 공동체이다. 당시 예수의 제자들이나 성경의 기자들이 세계 도처에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초대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실천되는 공동체를 세우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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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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