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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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게을러 옴짝달싹도 하기 싫어하는 장인어른을 모시고 사는 사위가 있었다. 사위는 얼마 동안은 그런대로 잘 참고 견디었으나 살림은 더욱 어려워만지고 갈수록 게으름이 심해지는 장인을 보자 몹시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장인을 땅 속에 묻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나무를 베어 관을 만든 다음 장인을 덥석 들어다가 관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묘지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이 소문을 들은 동네 어른 한 분이 그의 뒤를 쫓아와서는 ‘젊은 양반! 그래서야 쓰나? 자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 여기 옥수수 두 자루가 있으니 우선 집으로 가 자네 장인어른 시장기나 면해 드리게’ 라고 말했다. 이때 관 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물었다. ‘이보게! 그런데 그 옥수수는 껍질을 벗긴 건가?’ ‘안 벗긴 걸세’ 그러자 장인은 관을 꽝 덮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야, 그냥 가자’ 오늘날 일하기 싫어하며 노는 것과 잠자는 것을 즐겨하는 게으른 사람들의 결과를 풍자하는 이야기이다. 게으른 자의 공통적 특징은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할 의욕도 없고 심지어 음식을 앞에 놓고도 입에 떠 넣기조차 싫어한다. 한 마디로 ‘게으르다는 것’은 자기만족에 빠져 더 이상의 수고를 하기 싫어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례로 헬리 훼월리(Henry)는 현대인들의 게으름과 나태를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 부모와 아이들은 명령하고 순종하는 데에 너무나 게으르고, 교사와 학생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너무나도 나태하며,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영감을 주는 일에 너무나 맥이 빠져있고... 의사, 작가, 청소원 등의 직원들은 자기 일을 지겨워하여 매사가 대충 대충이며, 성도들은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늘어져서 담대히 증거 하지 못한다’ 또 어떤 분은 이러한 현상을 말하기를 ‘이는 비단 서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기강이 풀리고 윤리 관념이 무너지며 사회 각 분야에서의 질서가 문란해지는 ‘도덕적 해이’(Morar hazard)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퍼져 있다. 때문에 지식인들은 바로 몇 해 전 에 일어났던 IMF 위기의 주원인이 바로 이러한 질병 때문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이 고질병은 해외에 나간 이민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이민을 간 한국인들은 처음에는 유대인이 무색할 정도로 악착같이 일함으로써 때로는 유대인(Jew)에 빗대어 큐(Kew)란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이내 풀어져서 술과 도박 등의 사치와 낭비를 일삼다가 결국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부도를 내고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물론 모든 이민자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심심치 않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질병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세상의 많은 사람은 물론 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게으름과 나태가 얼마나 치명적인 질병이며 죄인가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주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 게으름과 나태는 죄악이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 게으름과 나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경고하셨다(렘48:10, 잠21:25). 고로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생활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당장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초래하기에 아주 민감하게 여기면서도 영적 게으름과 나태는 당장 큰 손해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둔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기도하는 것은 몇 날을 쉬어도 숨이 끊어지지 않기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영혼에 힘을 얻는 것을 쉬어도 육적인 식사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것에 그리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 게으름과 나태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영적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강력한 ‘신앙의 스태미나’(stamina)를 가져야 한다. ‘스태미나’란 원래 라틴어로 운명의 세 여신이 뽑는 실 곧 인간의 수명을 의미하는 스타맨(stamen)의 복수형 이었다. 오늘날에 들어서는 정력, 지구력, 체력, 끈기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스태미나’란 어떤 에너지를 끝까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요즘 사람들은 이 ‘스태미나’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건강 스태미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 스태미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즉 ‘신앙 스태미나’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신앙에 영양을 공급하는 말씀을 먹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또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신앙 훈련을 계획하고 그 훈련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가 말이다. 우리가 육체의 쾌락을 따라 술 마시고 담배 피고 기름진 것을 맘껏 먹으면 건강 스태미나가 무너져 이길 힘이 없듯이 육체의 즐거움만을 좇아 산다면 우리는 좋은 ‘신앙 스태미나’를 갖추지 못한 채 늘 영적인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님과 소원하게 되어 신앙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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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게으름과 나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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