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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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마미치(今道友信)의 글을 소개하게 되면서, 전적으로 그의 책 <미에 대해서>를 의지했으면서도, 제목과 내용에서 본 칼럼에 걸맞도록 다듬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그분께서 무례를 용서해주리라 믿는다.   
지난번의 “‘창세기’로 읽는 예술론”에서는 예술이란, 일단 그 내용이 순종적이거나 도전적이거나 간에, 초월자를 향한 수직적인 방향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한 저자는 “그렇다면”하고 새롭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시편’을 들고 나선다.  
‘시편’ 137편 1-2절,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금연주를 거부한다. 노래대신 눈물을 흘리며. 왜? 3절을 보자,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4절)한다. 야훼를 섬기는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노래할 수 있지만, 야훼를  모욕하는 바빌론 병사들을 위해서는 함부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노래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노래는, 직접적이 되었건 수직적이 되었건 간에, 노래불러야할 대상이 초월자이냐 아니냐를 두고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간끼리의 수평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었다는 점이 종래의 인식과 달라진 것. 예술은 인간과 신과의 수직적인 관계일 뿐만 아니라, 인간끼리의 수평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 동시에, 예술이란 승자가 패자에게 요구하는 위로가 될 수 없는 대신, 뜻을 같이 하는 이들끼리의 위로와 격려라고 주장하게된 것이다. 
저자는 또 다시 “그런데” 하고 어조를 가다듬으면서 “예술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호소하는 것으로만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 사울왕의 발작적인 질투를 피해 간신히 광야에 도망쳐온 젊은 다윗이, 밤에  동굴 속에 홀로 몸을 숨길 때,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초라한 신세로 절망의 늪에 가라앉아 있을 바로 그때, 그는 수금을 들어 조용히 노래한다.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 한가운데 누워 있어 보니, 그들의 이는 창끝과 같고, 화살촉과도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았습니다. 하나님, 하늘 높이 높임을 받으시고, 주님의 영광을 온 땅 위에 떨치십시오. 그들은 내 목숨을 노리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쳐 놓아 내 기가 꺾였습니다. 그들이 내 앞에 함정을 파 놓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그 함정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57편 4-6)
슬픔을 노래한 다윗은 시와 음악으로 스스로를 격려한다. 의심과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노래한다.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정했습니다. 내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결연한 모습으로 다시 일어나 노래한다. “내 영혼아, 깨어나라. 거문고야, 수금아, 깨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련다.” (57: 7-8)
버림받은 몸, 의지할 것이 없어진 젊은이가, 불안과 어둠을 밀치고 새벽을 깨우려한다. 새벽을 깨우다니... 절망의 늪에서 빛나는 미래를 창조해보려는 자기회복의 노래가 아니던가. 예술을 통해 다윗은 믿음을 되찾고 새로운 인생을 구축한다.
많은 고난을 극복한 다윗, 마침내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적의 손에 쓰러진 후, 그는 유다의 첫 번째 왕이 되고, 나아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영광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예술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다는 것은 위인들의 옛이야기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들기도 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른들의 꾸중에 시달리다, 눈물에 어른거리는 불빛 아래 혼자 쓸쓸하게 동요로 마음을 달랜 연후에야, 벗들에게 돌아갔던 추억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말했다. 예술은 초월자나 사회조직을 향한 한 인간이나 공동체의 호소일 뿐 아니라, 좌절한 인생의 지탱이 되어주고 있다는 고전적 전형으로 기록해두고 싶다고.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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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서 읽는 이스라엘의 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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