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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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한 예장 교단에서는, 전국을 돌면서 자립을 하지 못하는 교회들에게 계몽 성격을 띤, 교단의 앞으로의 정책을 은근히 통보하는 세미나가 있었다. 세미나 내용인즉, 앞으로는 대형 교회들이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를 감당하는 데에도 여력이 녹녹치 않기에, 미 자립 교회들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지원은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다만 교역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인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총회마저도 미자립 교회를 감당할 기력이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총회가 지향하는 방안이란 도시교회를 비롯한 농어촌의 교회들을 향해서 그저 손을 놓아버리는 듯 하는 무정책이란 인상이 짙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이 학원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특히 교역자들을 배출하는 신학대학원들이 얼마 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지방 신학들로부터 시작된 미달 사태가 중앙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문교부에서도 예산을 축소하고 소규모의 학교들부터 문을 닫게 하려고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여도, 얼마가질 않아서 급작스럽게 문이 닫히게 될 형편이 된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들은 자립도가 버거워진 교회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신학대학원을 나와 겨우 목사로 임직 받았지만, 교회들이 저들에게 사역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질 못하기 때문에, 안수를 받자마자 다른 직업을 병행하여 복음을 전하든지, 아니면 목회에서 손을 떼고 다른 직업을 찾아가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군대에서 제대하면 예비군에 편성되듯이 복음을 들고 사역해야할 고급 인력들 대다수가 안수를 받자마자 복음 예비군으로 편성되어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형편을 현장에서 줄곧 보아온 젊은이들은 신학대학원에 들어갈 리도 없겠지만, 안일하게 학생들에게 학위만을 씌워주고 바깥으로 밀어내던 교수들도 강단을 떠나야하는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총체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달리 마땅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권력과 명예욕과 물욕에 눈이 어두워진 지도자들을 탓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감이 든다. 교단이 운영하는 학원들이나 언론사들도 역시 모두가 대형교회들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고 있던 터라서, 묘한 방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초상집 개처럼 입을 다문 지 오래다. 이러한 경우에는 어떠한 프로그램을 활용해서도 쉽사리 길을 찾을 수 없다. 예부터 늘 하던 방식대로, 기본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가톨릭이 너무 멀리 기본에서 멀어졌을 때에, 오로지 할 수 있는 방안이란 칼뱅의 말대로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방법 외에는 없었듯이 말이다.
저마다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에는 올바른 출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이 요란하게 떠들썩할 때에는 도가 지나친 포퓰리즘으로 인해서,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민투표와 같은 결과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성난 시민들이 지성적인 판단보다는 눈앞의 달콤한 사탕에 현혹되어지기 때문이다. 요즈음 EU에서 야기된 영국의 브렉시트 현상도 선동적인 포퓰리즘의 결과가 어떠한 쓰나미를 몰고 온다는 것을 선례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역기능적인 운동력은 앞으로 대권을 내다보는 이들에게서도 답습되어질 것이고, 누구라도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자유하질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 떠나가시고, 그의 사도들도 사라졌을 때에 그 땅에는 마가와 마태와 누가와 요한 같이, 책으로 길을 열어주는 서기관들이 등장하기 시작 하였다. 마가는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마태는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누가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요한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였다. 이들은 글로써 자신들이 당면한 상황과 문제를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처럼 인터넷 시대에는 각양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고, 사람의 머리에서 상상되는 것이 모두가 업그레이드되고 있어서, 무언가가 해결을 줄 수 있을 것처럼 기대하는 눈치이긴 하지만, 요한서신의 지혜를 빌리면, ‘사람들이 메시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동요되질 말고, 오로지 각 사람 개개인이 기름부음으로 알게 되리라’ 하였다. 각 사람이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시간을 진지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 독자 중에서 아주 난감한 지경에 처한 자가 있다 할지라도, 성경에 집중하면 거기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바로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인류에게 참된 구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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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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