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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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다(Siddhartha)>가 출판된 것은 1922년, 저자 헤르만 헤세(1877-1962)가 노벨문학상을 탄 것은 1946년. 그런데 미국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싯다르다>가 붐이 된 것은 1970년대였다. “카운터 컬처”로 일컬어지던 “스피리츄얼리즘”, “뉴에이지 운동”이 불붙으면서였다. “비트닉” 세대로부터 이어지던 “선”(禪)이나 “도교”(道敎)에 대한 관심이 서구중심의 세계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한편, 새로운 인류학의 한 갈래가 배경이 되고 있었단다. 그럴 즈음, 어깨를 겨누며 등장한 베스트셀러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1925-1998)의 <돈판의 가르침, Teachings of Don Juan 1968)이었다.  
페루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작가요 인류학자로 알려지고 있는 카스타네다는 UCLA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후, 야키 인디안 주술사 돈판 마투스 (카초라 기티메아 Cachora Guitimea)에게서 수행했다고 전한다. 책에는 주술사와 나눈 철학적 대화와, 약초로 의식의 변화를 체험한 이야기들이 르포르타주의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비서구적인 지혜는 독자들을 매혹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에 번져 나갔다. 중의 한 토막...
“돈 판이 가스타네다에게 말한다.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거든 먼저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내가 마룻바닥에 앉아 피곤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지치지 않고 앉아있을 만한 ‘자리(Sito)’를 찾아내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 때까지 무릎을 가슴에 대고 정강이를 안고 앉아 있던 나는 그 말로 등이 아프고 지쳐 있다는 것을 깨쳤다.” 가스타네다는 ‘약간 자리를 바꾸어 보면 어떨까’하는 제안쯤으로 이해하고, 바로 그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것은 가스다네다의 착각이었다. 돈 판은 가스타네다를 나무라면서 ‘자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행복과 힘을 느끼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그렇다면서, 가스타네다가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수수께끼를 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스타네타는 어리둥절해졌다. 티끌만치도 힌트는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베란다는 3.6m×2.4m정도의 그리 넓지 않는 공간이기에 쉬 찾아질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자리’의 가능성은 무한한 것을. 
돈판은 엄하게 충고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모든 것이 자신의 세계에 주어진 것은 아니나, 배워야할 것은 빠짐없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말했다. 한 시간 가량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자리의 다름을 느끼려고 마룻바닥을 두루 조심스럽게 옮겨다녀보지만, ‘그 다름을 분별할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참 만에, 두 손을 베개 삼아 덜렁 넘어졌다가는 잠시 동안 엎드려져보기도 했다. 벌렁 누었다 엎드려졌다하며 마룻바닥을 굴러다녔다. 비로소 막연하나마 문득 어떤 기준을 느낀 것 같게 된다...
돈 판이 다시 나타나서,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니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했다. ‘눈이 올바르게 사물을 보고 있지 않을 때, 사람은 눈으로 느낄 수가 있는 것’이라며 덧붙여 일러주었다. 그로부터는 자리를 옮겨가며 시야에 나타나는 색상의 변화를 관찰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끼게 될 즈음에야, 한 곳에서 색상이 달라진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 거기에는 큰 바위가 있었다. 다른 자리에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고 천천히 뒤로 기어가서는 그 바위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돈판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찾았군!’ 가스타네다가 누운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였던 것이다. “ ....... 
철늦게 <돈판의 가르침>을 들먹이게 되는 것은, 미처 맛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히피시대가 아쉽다거나 풍수설에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다. ‘자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어쩐지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 ‘자리’란 것을 잡고 있다고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처지임에도, 어쩐지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허전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범람하는 정보물결 탓이라며 짜증을 부리다가 딴은 얻어낸 ‘자리’인지도 모르고.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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