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쉬운 것이다·1
2016/07/19 16:5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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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신앙에 대한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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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한다.”
완벽한 삶이란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단 종파나 우상을 섬기는 금욕적인 신앙 풍토를 그대로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있음을 아십니까?
오직 진리로 자유함을 체험하지 못하는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위선적 행위로 불안해진 사람들의 끝없는 정욕적 노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복음의 가치를 이해하게 하여 생명의 삶으로 행복하게 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일반종교로 둔갑시킨 유교나 무교로 다져진 터에 서구 유럽으로부터 물려받은 남의 것을 무조건 좋아하는 모방적 풍토의 노예가 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우선 마가복음 7장 6~9절을 보겠습니다. 이사야가 외식하는 자에게 예언한 내용입니다.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너희가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버리는도다.”
교회와 종교는 절대로 다릅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종교의 틀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이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종교의 범주는 범신론적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격이 철저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하여 무소 부재하시고 창조주로서의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치리하심에 대한 권위나 섭리나 예정이나 은혜인 모든 것을 알면서도 모든 방법이 종교적인 형식에 매여 있으면서 그 형식의 틀 속에 가두는 것이 신앙으로 아는 무서움과 공포 속에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종교의 틀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은 교회를 악마의 영역에 집어넣으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건을 통해 이룬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를 말살하려는 사단의 음모임을 알면서도 자기중심적으로 된 삼분설의 입장에서 신앙의 목적을 기복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교회가 교회의 순수성을 상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서 생산된 무수한 프로그램이 화려하게 환상적인 유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능숙한 방법입니다.
여기에 매여 있기 때문에 엎어놓은 컵에 소낙비를 맞아도 겉만 축여진 상태로 메말라 가는 생명력이 없는 순간적 말초신경의 즐거움에서 끊임없는 욕정으로 자유와 평안을 체험하지 못하는 끊임없는 논설과 이론으로 자기만족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학에서 조직신학 맨 처음인 서론에서 종교와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일반종교, 즉 자연종교로 모든 종족들이 자기들의 신을 섬기는 것을 묶어 말하여 일반 계시라고 하여(행 17:27~29, 롬 1:19~21) 사람 편에서 신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특별계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구분하여 하나님 편에서 인간에게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뜻을 밝혀 주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하나가 되신 것을 특별계시 종교라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신앙적 상태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 의식에서나 신앙 행위에서 일반 종교의 틀 속에 집어넣는 행위가 아주 당연한 기독교의 의식으로 거리낌도 없이 받아들이는 보편성입니다.
일반종교는 아주 간단한 이론입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개체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자신이 믿는 신과 떨어져 있기에 사람이 노력으로 제물을 가지고 진력을 다하여 찾아가는 제사의식입니다.
이 귀중한 사실을 사람들은 복음이라고 하면서 복음의 가치를 일반종교로 무력화하고 이방 종교로 둔갑시킨 현대교회에 바른 신앙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입니다.
개체개념이란 신과 사람이 분리된 자리에서 인간은 자기가 섬기는 신을 찾아서 섬겨야 합니다.
동체개념이란 구속사역이 완성되지 않은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제단을 만들고 지성소 앞에 제사의식으로 대제사장이 대신 속죄하는 일반 종교적 개념이었으나, 신약 교회시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으로, 하나님은 격리된 지성소의 휘장을 거두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우리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즉 함께, 나와 함께,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님의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완성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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