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10-1.jpg
 
며칠 전 외신에서 엘리 비젤(Elie Wiesel, 1928-2016)의 부음을 접하게 되었을 때, 30년 전 그 날 밤의 전율이 다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것을 느꼈다. 서가를 뒤져 그의 연작시리즈 <밤> <새벽> <낮>을 찾아내면서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동안 멀리하고 있었던 것은 이제 그날 밤과 같은 아픔을 견딜 수는 없는 나이가 된 탓이라고.
그의 삼부작 <밤> <새벽> <낮>을 읽은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새로 ‘목회업’의 판을 벌리면서, 갈등과 회의로 고민하고 있을 즈음, 우연히 외서전문점에서 훑고 있던 잡지에 실린 서평에서 만나게 된 <밤>의 한 장면이 일으킨 전율이 동기가 된 것. 어른 두 사람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는 어린 아이의 죽음의 장면 말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하는 물음에 엘리에젤은 마음속에서 대답한다. “여기, 이 교수대에 목매 달려서” 
약 보름이 지나 주문한 책이 도착한 그 날 밤, 나는 한 숨도 못 잤다. 떨리는 몸을 가눌 길 없어 몇 번을 책을 덮었던가. 나로서는 그 전율을 나의 말로 재생산할 수가 없다. 몇 곳을 인용하는 수밖에. 
마지막 부분, “ 자유인이 되어 우리가 맨 먼저 한 짓거리는 식량에 덤벼드는 일이었다. 이 짓 말고는 생각할 것이 없었다. 복수에 대해서도 양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빵에 대해서만.
배를 채우고 나서도 복수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이튼 날, 몇 젊은이가 바이마르로 달려가서 감자와 의복을 쓸어 담아왔다... 그리고 매춘부와 잤다... 생사를 헤매던 끝에 간신히 일어난 나는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게토이후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울 밑바닥으로 부터 시체 하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눈 속 그 시체의 눈동자는 그날 이후 한 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  
또 한 장면, 25대나 몹쓸 매를 맞은 친구 바이올린 주자 유리에크의 이야기: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 위에 쌓여있는 캄캄한 바라크 속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이곳, 자신의 무덤가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미치광이는 누구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유리에크가 틀림없을 것이다. 베토벤 협주곡의 일부를 켜고 있었다. 그렇게도 맑은 음색을 들은 적은 없다. 이 고요 속에서... 깜깜한 밤, 들리는 것은 오직 그 바이올린 소리뿐. 마치 유리에크의 혼이 활이 된 것 같았다...그는 다시는 연주할 수 없는 무엇을 연주했다. 절대로 유리에크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날이 새면서 유리에크가 엎드려 죽어있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곁에는 짓밟힌 그의 바이올린이 작은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삼부작이라고는 해도 줄거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는 각각의 이야기. <밤>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이고, <새벽>과 <낮>은 픽션이다. 그렇다고 두 작품이 강제수용소에서의 작자의 체험적 증언이 될 수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리라. 오히려 픽션이란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엘리 비젤은 15세 때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왼팔에 ‘A-7713’이 새겨진다. 누나 둘은 살아남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스실에서 처형된다. 함께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아버지는 이질과 피로로 앓다가 1945년 4월 수용소가 해방되기 직전에 사망한다.
종전 후,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한 뒤 기자로 활동.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밤>을 출판하게 된 것은 프랑수아 모략의 권면 때문이었다. 모략의 서문을 건너뛸 수는 없으리라.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출판된 <밤>은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갖다 주었다.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립 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기아와 박해 현장을 찾아 구호활동을 벌이고, 핵전저지운동에 힘을 쏟는 등 사회활동을 펼친다. 홀로코스트 위원회 의장을 거쳐, 1980년에는 미합중국 홀로코스트 추모위원회 초대 위원장,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재단을 설립, 차별, 불관용, 불의에 맞서 싸워왔다. 노벨상 수락 연설의 명 구절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은 지금에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enoin34@navwer.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엘리 비젤의 부음을 접하면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