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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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의 범죄 이후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과 사람이 분리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일반 종교는 떨어져 계신 하나님을 찾아 섬기는 그런 일을 지금도 신앙의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거나 가까이하면 죽음을 당한다는 두려운 존재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섬기고 속죄물을 준비해야 했던 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라는 십자가의 대속의 완성을 무효로 만드는 행위가 곧 일반 종교적 삶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마저도 이런 종교적 삶을 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신약교회 시대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제물이 되셔서 드려지심으로 율법이 요구한 종교행위를 완성하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신과 사람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주는 우리 안에 우리는 주안,에 있게 되어 한 몸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이 근본이 완전히 다른 일반 종교의 방법에 빠져버린 상태로 신자들에게 헤아릴 수도 없는 잘못된 신앙으로 변질시킨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교회의 의미를 상실당하여 건물이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집처럼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진정한 성전과 예배의 의미를 상실하고, 의식에 묶인 멀리 떨어져 있는 예수님을 예배당에 모신다는 우상적 성전을 만들기에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신이 있는 신당으로 신성시하고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개체로서 찾아가야만 만나는 하나님으로 섬기는 대상으로 추락시켰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일반 종교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로마 가톨릭의 우상화하기 위한 돈벌이 하는 도구로 사용한 거대한 모순을 무너뜨린 것인데, 지금도 교회는 그 귀신을 섬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개념입니다.
교회의 구성체는 일반 종교들처럼 하나의 신을 섬기는 신도들의 개념이 아닙니다. 몸으로서의 구성체라는 것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교회는 신자들의 회집체로써의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개념입니다.
로마서 12장은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에 대한 것을 설명하였고, 고린도전서 12장은 머리 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성령의 여러 가지 현상으로써 곧 은사에 대한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주일 성수란 안식일이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바치는 구약의 제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교회가 일반 종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존재하는 것입니다. 몸으로서의 교회인 것입니다.
 에배소서 5장 22절 이하의 말씀이 곧 지체로서의 한 몸 관계를 결론한 것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에베소서 1장부터 택하신 목적과 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임과 십자가로서 화목하게 하신 일과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비밀과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과 새사람에 대한 것과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로 주님이 함께 계신 삶 자체와 아내와 남편과의 질서로 그리스도와 한 몸 된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자녀와 부모 간의 질서로써 종과 상전 간의 질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에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진다”라는 삶 자체가 바른 신앙의 원리로 설명했습니다. 그러기에 떨어져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호흡하시는 몸 안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당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항상 함께 계신 하나님으로 동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십자가 사건을 치르시고 부활 승천과 함께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갈등과 목마름이 있는 이유가 일반 종교에 매여 멀리 계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신앙 행위나 구약의 율법의 요구에 따르려는 온갖 예배의식이 하나님과 멀리 떨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으로 의식에 매이게 된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우상종교의 의식으로 사람들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개인 생활을 분리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한 몸의 지체인 동체냐, 떨어져 있는 개체냐에 따라서 근본적으로 생명이냐, 죽음의 삶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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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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