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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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사육사 야마가와 고지(山川宏治)와, 역시 사육사였던 선친 세이죠(淸藏) 2대가, 한 코끼리를 두고 40년에 걸쳐 엮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아들 사육사 고지가 한 잡지에 실은 수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밤 늦은 시간, ‘하나코’가 쓰러졌는데 일으켜줄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과장의 메시지를 받고, 나는 곧 ‘이노가시라’ 자연문화원으로 달려갔다.”
‘하나코’는 야마가와 부자가 돌보아주던 코끼리. 고지가 ‘하나코’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5년만이다. 5년 전 그날, 고지는 이빨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하나코’의 입에 손을 넣어 좋아하는 오렌지를 짜서 먹여주며 “잘 있어요!”하고 작별인사를 남기고는, 새 임지 ‘다마’로 전출된 것이다. “사육사가 담당을 벗어난 동물에게는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 있어, 하나코를 만나러 ‘이노가시라’에 올 수는 없었단다.  
‘하나코’가 타이로부터 ‘우에노’에 오게 된 것은 1949년, 두 살 반이었을 때. 1954년에는 ‘이노가시라’로 옮겨지는데, 사람을 밟아 죽인 사고를, 그것도 연속 두 차례나 지질러버린지라, ‘살인 코끼리’라는 낙인이 찍혀 앞뒤다리를 쇠사슬에 묶여서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하나코’를 코끼리답게 길러준 것이 아버지 사육사 야마가와 세이죠. 
담당을 맡은 지 나흘 만에 ‘하나코’의 사슬을 풀어준 아버지는 아침마다 몸을 만져 주며 말을 건넨다. 더러 손님이 ‘살인 코끼리’라며 욕설을 퍼부을라치면 그녀에게 다가가 지켜준다. 곧 ‘하나코’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끼리가 된다.
아들 고지가 처음 ‘하나코’를 만나게 된 것은 중 3 때, 저녁 무렵 아버지를 기다려 우리 앞에 서있는데, ‘하나코’가 긴 코로 그의 옆구리를 치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코치기’로 이름 붙여진 ‘하나코’ 특유의 위협행위가 담당사육사의 아들과 치른 첫 인사였다. 
고지는 고교를 졸업하면서 경찰관이 되지만, 서열이 뚜렷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퇴직했고, 도쿄도 직원이 되어 부임 받은 곳이 ‘다마’ 동물원. 세 마리의 코끼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아버지의 충고는 단 한마디, “막대기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연장이 아니라, 사육사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란다.” 막대기란 끝에 쇠칼구리가 달린 연장인데, 많은 사육사들은 이것으로 코끼리를 두들기며 길들이는 것이 예사였다. 아버지는 코끼리가 가족이라 했다.
아버지 ‘세이죠’가 1990년 동물원을 퇴직할 때까지 ‘하나코’와 함께한 세월이 무려 30년. 그리고 1995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아들이 ‘하나코’의 담당이 된다. 중3 때 첫 대면을 치른 지 30년만의 재회였다. 당시 ‘하나코’는 몇 차례 더 사고를 저질러 다들 무서워하는 코끼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지는 ‘하나코’의 속마음은 유순하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부드럽게 대해주면 반드시 알아줄 것이라고. 둘의 관계는 서서히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게 ‘하나코’와 지난 세월은 10년 남짓.
헤어진 지 5년 여 만에 만난 69세의 ‘하나코’는 우리 속에 누워있었다. 쓰러져 누운 지가 10시간. 폐가 짓눌려 호흡 불능이 될 지도 모란다는 두려움에 사육사들은 그녀를 돌아 눕히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다. ‘하나코’는 긴 코로 방해를 놓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듯, “그만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하나코’가 오른 쪽으로 돌아눕자 이제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참에, ‘하나코’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다시는 들이 쉬지 않는 것이었다.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야마가와 고지’와 부친 ‘야마가와 세이죠’ 부자 2대가 40년을 매달렸으니, ‘하나코’의 일생은 곧 그들 부자의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아들 고지의 말 “‘하나코’에게 ‘지금 누굴 만나고 싶지?’ 한다면 ‘야마가와 세이죠’ 하고 대답할 것은 틀림없다. 이제 아버지와 ‘하나코’는 하늘나라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을 터. ‘아버지를 부탁해요!’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
  그의 소박한 내세관을 나무라기에는 40년에 걸친 부자 사육사와 코끼리의 의 스토리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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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아버지를 부탁하는 사육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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