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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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2:1-3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로 아브라함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되고, 그의 이름을 크게 하며, 그를 통하여 세상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듣고 그의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곳을 향하여 갔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시작 된 것이다.  이 말씀도 중요하지만 창세기 18:17-19 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민족이 되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그가 그의 자식과 그 가족들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한 것을 그에게 이루려 하는것이다.”(창 18:17-19)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악행의 살피기 위하여 오신 김에 먼저 아브라함에게 들르셨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신 아들을 내년 이맘 때에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그의 장막을 떠나시며 아브라함을 향하여 입을 여시며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얼마나 가깝게 생각하고 신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호와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감출지라도 아브라함에게 만은 자기의 비밀을 감출 수 없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이미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에 주셨던 약속, 아브라함이 크고 강한 민족을 이루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를 통하여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꼭 이행하실 것을 재차 다짐하고 아브라함에게 확신시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꼐서는 그가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을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 …”하고 그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을 설명하시는데 히브리어로는 “내가 그를 아는 것은”()이라고 쓰고 있다. “야다”라는 말의 기본 의미 (primary meaning)은 “알다”(to know)이다. 그러나 이 어휘는 관계어로 남녀의 성관계를 기술하는 데 많이 사용하고 있는 데, 이 경우는 “동침하다”(to have a sexual intercourse) 라고 번역하고 있다(창 4:1).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인 부부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 관계어는 단지 부부와 관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빗대어 은유로도 많이 사용학 있는 데 이때는 선택용어(election term)나 언약 용어(covenant term)로 쓰이는 경우이다(암 3:2). 본문에서는 이를 선택용어로 많은 역본들은  “내가 그를 선택한 것은”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는 “내가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도 번역인 선택 용어로 번역하였지만 의미상으로는 관계어로 “내가 그를 알고 있는 것은” 혹은 “내가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등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상 더 잘 어울린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키게 함으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히브리어 성경은 “그의 가족들에게”라기 보다는 그의 “후손들에게”()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여호와 도”란 말은 “여호와의 길”(the way of the Lord) 라는 말인데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도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가 더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호와의 도란 여호와의 말씀을 통하여 발견되고, 구성된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도리나 소신, 혹은 철학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여호와의 도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이나 후손들에게 여호와의도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며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의라는 히브리어 “체댁”()이라는 말은 보통 “의” 혹은 “공의”(righteousness)로 번역하고 있는 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졌을 때 의롭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의”(justice)라고 번역하는 “미쉬팟”()이라는 히브리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옳고 바른 원리에 근거하여 나누는 바른 관계를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의와 정의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관계를 갖는 것은 그의 자식들과 후손들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바른 관계를 유지하도롤 가르치고 행하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받게 하고자 하는 의도라는 것이다.
관계는 신구약 성경의 맥을 잇는 중요한 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의 교재의 대상으로 창조하시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다. 그러나 사람은 그 관계를 끊고 하나님을 떠나버렸다. 스스로 반역과 저주와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관계를 살리고 회복하고자 그의 아들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요 15:4)고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모두 하나가 되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요 17:22)라고 기도하신다. 이 유언적인 명령과 기도를 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신비하고 영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관계를 갖고 그를 선택하신 이유, 말하자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궁극적인 목표도 바로 이 관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 생활하며 추구해야 할 점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성령 안에서 나누는 연합이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연합, 곧 그리스도와 함꼐 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실 때부터 관계와 연합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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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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