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신자, 김상옥 열사
2016/09/29 15:5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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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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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역사는 아직 240년도 채 안 된다.   1774년 그들은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선언한 후, 이 짧은 역사 속에 세계 최강의 나라로 자리 잡고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오늘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역할이 상당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신생국가 미국이 어떻게 이런 막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그들 나라가 독립하자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독립군들을 정치인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자유를 위해 투쟁한 그들이 오늘날 정직과 신뢰의 사회를 만들어내었기에 최 강대국이 되었으며, 신용국가가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거짓말이나 부정부패는 잘 통하지 않는다.  유명한 사립학교에 가보면, 자신의 증조,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고 자랑하는 후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 후손은 큰 축복 속에, 자신 조상들의 뜻을 받들어 미국을 이끌고 있음이 너무나 부럽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도 독립한 후, 나라독립에 몸을 바친 사람들이 정치를 했더라면, 우리나라도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을 것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표한다.
김상옥의사는 1890년 1월에 출생하였으며, 부친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우리나라에 전파된 초기 기독교를 받아들여 성경보급, 교육사업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의사가 16세가 되던 1905년은 러.일 전쟁으로 국내외가 혼란하였다.  그는 서양나라들이 부강한 것은 기독교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우리나라도 기독교를 받아들여야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독교 대한감리회 동대문교회에 입교하였다.
당시 동대문교회 내에는 ‘신군야학교’가 있어서,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어의동공립보통학교 (현, 효재초등학교)에서 수학하며 국내외 정세를 파악하는 지식을 얻었다.  그가 20세가 되면서 불우청소년들을 위한 ‘동흥야학교’를 설립하여 불우청소년들을 위한 배움의 터를 열어주었다.  
그 후 일제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국제정세와 선진국의 문화를 공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경성기독교 청년회관 (YMCA)에 있는 경성영어학교에 입학하여 영어공부에 힘쓰며, 후에 3.1운동을 함께 할 직공들과 함께 철공소 사업도 경영하였다.
3.1운동 같은 민주적인 평화시위를 통해서는 일제를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하여, 비밀결사대를 조직하고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 조직원이 되어 무력으로 항쟁하기로 결심하고 실천에 옮긴다.  김상옥의사는 독립운동뿐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일에 적극 힘을 썼으며, 홀로 1,000여명의 일경과 맞싸우다 최후를 맞는다.

기독교적인 업적
1. 김상옥의사는 민족 3.1운동의 기독교 대표 이필주 목사의 지도로 YMCA 청년부장으로 활동하며, 현 동대문에 있는 동대문 감리교회 송정도 목사님 지도아래 청년학도, 휘문, 배재, 경신학교등의 학생들을 모아 사회계몽과 애국정신을 넣어주었다.
2. 동대문 교회에 파송된 영국인 피어슨 선교사 댁에서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였다. 혁신공보를 발간하고 민족의 의식과 사회계몽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백영사 (이종서, 임용호, 송정도 조직)를 조직하여 일어 사용을 금하였고, 금주와 금연 운동을 전개하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하였다.
3. 비밀결사대와 백영사의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어 심한 고문을 겪고 40일 만에 석방되어 다시 혁신공보 발간을 지휘하였다.
4. 동대문교회의 송정도 목사의 주례로, 정희종 장로의 딸 정진주씨와 동대문 교회에서 결혼하였으며, 교회 앞에 책방을 내고 권서(권서란-성경책을 파는 사람)활동을 하며 성경책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장터등을 다니면서 약장수 역할을 하면서 성경 보급에 힘썼다.
5. 그 수입금은 독립운동에 사용하였으며,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장과 사업장을 마련하였으나, 일본 헌병들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탄압에 의해 서점 및 권서활동을 중단하였다.
6. 재등총독을 처단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나, 이를 실행할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므로 이필주 목사의 다락방에 2개월 동안 숨어있어야 했다.
7. 이필주 목사의 비문에 의하면, 김상옥 의사는 전덕기 목사 (상동교회), 최성모와 함께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고 혁명적 일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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