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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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되었으나 교계마저도 침울함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교계는 연합하는 데에 따른 불편한 것들을 정리하려고 애쓰는 듯하고, 한 교단에서는 궁여지책으로 ‘거룩’을 슬로건으로 들고 나선 것이다. ‘거룩’에 관하여는, 구약의 시대에 성소에서 경험하며 훈련되던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학습하며 훈련되는 성도의 삶을 말하는 것이리라. 성소와 지성소의 정결규례가 오늘에도 시청각으로 경험되어질 수만 있다면, 어렵긴 해도 우리가 거룩하여지는 데에 한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신도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거룩함에 근접하려면, 제일 먼저 기름부음을 받은 교역자의 본보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더럽혀진 요인은 신도들이라기보다는, 성소에 매일 출입하는 사제들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도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가까이 함에 있어서, 복음서대로 하였다면 보다 쉽게 지성소에 접근할 수 있었으나, 교회의 권위와 제도가 중간에 다리 역할을 자청하는 바람에, 가톨릭 같은 교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같은 제도에서 비롯된 폐해를 피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어둡게 된 데에는 우리 지도자들의 욕심이 지나치고 게으른 탓도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 부흥이 시작되고 있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사도들의 발 앞에 많은 것들을 가지고 왔다. 토지 문서도 갖고 왔겠지만, 이런 것들은 자신들이 직면한 궁핍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 할 수 없었으므로, 공동체의 필요들에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토지를 급하게 팔아서 내놓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우리 발 앞에 수**억을 가져다 놓는 일이 생긴다면, 그 순간 우린 돌아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흐름을 타고 틈새를 노린 한 부류가 있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라는 부부가 토지를 팔아서 그 일부를, 그들이 판 토지 대금 전부인양 행세하며 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사도들은 분별력을 가지고, 끼어든 마(魔)를 잡아채서 깨끗하게 제거하였다. 아마도 우리 같았으면 불가하였을 터인데, 주님이 빛을 비추시고 계셔서 발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부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교회 안에서 싸늘한 주검을 맞이하였다. 마치 성소에 다른 불을 들고 들어간 나답과 아비후가 즉각 주검을 당한 것과 다르지 않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당면한 시간대나, 나답과 아비후가 당면한 시간대가 거의 비슷하다. 하나는 구약교회가 시작되던 때이고, 또 하나는 신약교회의 출생 시간 때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이 비슷한 공통점을 갖는 데에는 우리에게 시사 한바가 크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놓친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과 같은 부류일 것이다. 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은 교회의 부흥시기에 이러한 부류를 피해갈 수 없었다. 존 스토트를 비롯한 우리네 초창기 교계 지도자들은 이런 일들을 당면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들은 당시 깨어나 있었던 것이다. 욕심을 덜어내면서 바람직한 교회를 세워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백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러한 부류에 노출되는 일들이 대표적인 교회들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루가 멀지 않게 매스컴의 표적이 된 교회들은 비리가 들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일반 시민들이 교회를 외면하게 되도록, 그 미련함을 떨쳐내질 못하였다. 몇몇 교회들이 더럽혀지면서 결국에 가서는 한국교회 전체가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서 반세기를 목회하면서 경험된 것은, 마치 사사기서의 말기를 보는 것처럼,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저마다 제 뜻대로 살려는 것을 보아왔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규례대로 하나님께 나아오질 않는 것이었다. 교회에 들어와서 권력을 행사하려고, 모자 쓰는 일에 혈안이 되고 영악해지더니, 심지어는 거대한 교회 금고에 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천사 같은 위장을 하고 날개를 다는 것이었다.
교계가 ‘거룩’이란 플래카드를 요란하게 붙이고 광고를 하는 것은 왜일까? 진정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가까이 하려는 것일까? 민수기 16장에서도 보면 고라가 다단, 아비람 등과 협잡하여 이스라엘 지도자 250명을 끌고 나와서, 저마다 지닌 향로에 불을 두고, 그 위에 향을 올려서 피우며 회막으로 향하였다. 그들이 회막 앞에 섰을 때에, 그렇게 힘 있고, 거룩하고, 위엄 있게 보이던 행렬이, 급하게 공격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불로서 모두 재가 되고 말았다. 저들이 하나님의 불이 아닌, 거짓된 불로 시위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 아닐까? 야훼 앞에 ‘거룩’을 꾸며대고, 사람의 생각대로 법궤를 길들여 보려고 하는 짓은 아예 그만두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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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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