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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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은 그의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의 형과 싸워 그의 어머니를 힘들게 하였다(창 25:22). 그의 투쟁적인 삶은 출생시에는 말할 것도 없고, 소년 시절, 그리고 장년의 때 까지 계속된다. 그의 투쟁의 대상은 그의 형 에서였다. 야곱은 태어날 때 그의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있었으므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불렀다. “야곱”이라는 말은 “발꿈치를 잡다” 혹은 “속이다”(창 27:36; 렘 9:3; 호 12:4)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아카브”로부터 명사형 “속이는 자”(deceiver)와 “발꿈치”라는 의미가 파생한 것이다. 뒤에서 발꿈치를 잡는 것은 분명 사람을 속이는 행동이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의 복을 가로챈 야곱을 향하여 “네 동생이 속임수로 와서 네 복을 빼앗았구나.”(창 27:35)라고 말하자 에서는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까?”라고 대답한다. 에서는 야곱의 이름을 “속이는 자”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출생시에 발꿈치를 잡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어린 아이 이름을 “속이는 자”의 의미를 가진 “야곱”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지나치다. 오히려 뱃속에서부터 싸우던 이들이 먼저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하여 겨루던 야곱의 투쟁적인 모습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해야 맞다.
이후 야곱은 죽을 끓여서 장자권을 사고, 아버지를 속여서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서 피신하여 라헬을 만나 그 여자를 얻기 위하여 20년이나 머슴살이를 한다. 야곱의 20년 머슴살이는 한 여자를 얻으려는 집념으로 그의 장인 라반과의 속고 속이는 투쟁의 세월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집을 나온 지 20년 후 야곱은 그의 네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고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가는 길이 평안하지 않았다.  뒤에서는 라반이 그를 해고자 추격해오고, 앞에서는 일찍이 그를 죽이려 했던 형 에서가 그를 대면하고자 다가오는 형세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도우신다. 먼저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해하지 못하게 하신다(창 31:29), 라반은 야곱이 말없이 도망간 사실에 대하여 섭섭함을 토로하고 서로 언약을 맺고 야곱을 보낸다. 그러나 야곱은 에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고 걱정하였다(창 32:7). 그리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도 하지만 또한  “내가 내 앞서 가는 선물로 그의 감정을 풀고 그 후에 그의 얼굴을 보면 그가 아마도 나를 받아줄 것이다.”(창 32:20)라고 말하며 많은 선물을 여러 개로 나누어 따로 따로 보낸다. 그래도 그는 불안하여 밤이 되자 가족들을 얍복강 건너로 보내고, 자기는 홀로 강을 건너지 않고 있다가 동이 트기까지  하나님과 씨름하던 중 엉덩이뼈가 탈골이 된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 그 사람이 자기를 보내라고 하자, 야곱은 그가 자기를 축복해주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그를 붙잡는다. 이때 그 사람은 야곱을 묻는다. 야곱이 그의 이름을 말하자 그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개역성경)라고 말한다. 그의 이름을 고쳐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만난 사람을 야곱은 30절에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28절에 있다. 개역성경의 번역대로 보면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고 할 때 이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사람”이 단수형으로 번역된 만큼 어떤 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일 것이고, 본문의 전후 문맥을 고려해 볼 때 분명 그는 야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야 옳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키-살리타 임-엘로힘 브임-아나쉼 바투칼”이라고 말한다. 이를 직역하면 “네가 하나님과 (겨루고) 또한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기 때문에 ...”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은 먼저 하나님과 싸우고, 또한 사람들과 싸워서 이기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라는 것이다. 개역성경은 야곱이 사람들과 싸워서 이긴 사실을 빼놓고 있다. 개역개정에는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개역성경의 번역보다는 원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해보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야곱은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싸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승리했다. 이제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나서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창 32:30)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한 후 야곱이라는 이름이 바뀔 뿐 아니라 사람도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20년 동안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에 품고 살아오던 야곱은 막상 에서를 만났을 때 “제가 형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창 33:10)라고 말한다. 그의 형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처럼 변한 것이 아니고, 야곱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야곱은 이제 그의 마음에 있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 내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에서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들과 얽히고 설킨 가운데 다투고 싸우며 살던 야곱이 이제 밤을 세워 하나님과 겨룬 후에 그는 모든 인간들과의 갈등과 문제를 다 날려 보내버린 것을 볼 수 있다. 야곱이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었듯이 우리도 사람들과 부딛끼며 사는 삶에서 하나님과 겨루며 사는 삶을 살아야 우리는 우리를 억누르는 모든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다.
야곱은 하나님과만 더불어 싸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도 겨루어 싸워 이긴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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