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① 저급한 비성경적 신비주의
2017/03/31 16:3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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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신비체험에 성경을 자의적으로 끌어다가 해석
보편적 교회의 가르침 왜곡 정통성 해쳐… 복음의 변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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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신학과 신비신학
기독교의 교의신학(dogmatic theology)은 신비신학(mystical theology)에 기초하고 있다. 초대교회 교부들에 의해 발전한 기독교 신비사상은 교의신학과 신비신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이 시대에 형성된 중요한 교리, 즉 삼위일체 교리와 성육신의 교리는 신비적인 가르침을 고정화 한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의 신비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들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감지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기독교의 교의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 감지를 객관적 용어로 정확히 표현하려 하는 것이다. 이 객관적 용어를 통해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신비적 이해, 기독교의 고유한 신비적 하나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부시대 이후 서방교회는 교의신학과 신비신학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교의신학은 곧 신학(theology)이 되고, 신비신학은 곧 영성(spirituality)으로 분리된 것이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신비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신비주의화(mysticism) 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모두 신비신학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철학적 사유가 아닌 계시의 문제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고, 삼위일체 교리이며, 성도들 속에 거하는 성령의 내주(內住)이다. 이것은 모두 계시에서 오는 것이지만 신비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기독교의 신비신학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성령으로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감지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고 있으며, 교의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직접 감지를 객관적 용어로 정확히 표현하려 노력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신비신학과 교의신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의 양면인 것이다.
그런데 왜 신비주의(神秘主義)가 문제가 되는가? 거기에는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의 현실적 삶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고, △신인합일(神人合一)을 강조함으로 신의 인격성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으며,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잊고 자기가 스스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그릇된 환영에 사로잡히며, △초이성적 반과학적 경험에 지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하나님의 자연적 질서를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며, △금욕적 순결과 가치를 강조한 나머지 문명의 기술적 진보에 대한 무관심과, △교회공동체에서의 정해진 규범과 윤리적 실천을 소홀히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엉뚱한 비의전승(秘儀傳承)을 강조하여 인간을 미혹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신비사상과 신비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복음은 그 첫 구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14)라고 한다. 순수 영이신 하나님의 품 안에 있던 독생자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이 성육신(Incarnation)의 고백은 기독교 신비신학의 기초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은혜의 도래(到來)에 의한 것이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깨달음은 육체의 눈보다 훨씬 밝히보는 내면적인 눈을 가진 사람과, 육체의 귀보다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귀를 가진 사람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우리에게 세미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은총의 계시를 깨달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이다.
모세는 사람이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을 시내산의 빽빽한 구름 속에서 보았다. 사도 바울은 이 장막이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선재성(先在性)으로 창조되지 않은 분이시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차매 수육(受肉)으로 인간 세상으로 오신 것이다. 이 분은 태초부터 계신 독생하신 신(神)이시고, 온 우주를 품 안에 안으시고 만물을 초월한 곳에 계신 오직 한 분이시다. 그가 세상의 종말기에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자유를 남용하여 존재를 상실한 자들을 다시 한번 존재 속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장막을 우리들 가운데 지으시고 자신을 제물로 드려 단번에 구원의 희생제사를 온전하게 이루신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분에게 예배하는 일 밖에 없다. 주께서 그 영혼들을 음부와 암흑에서 구원하시고 영광스러운 일을 행하셨다. 이는 우리의 영혼과 삶을 악령의 지배로부터 해방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원리에 선 신비신학은 기독교의 교의신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는 순전히 기독교 공동체의 경험에 따른 고백에 근거하는 것이다.

저급한 신비주의 보편적 교회의 정통성 해쳐
그러나 역사적 교회공동체의 경험과 달리 한국교회의 예언기도나 개인적 신비체험은 교회공동체의 규범이나 윤리적 실천을 무시하고, 계시를 빙자하거나 교주우상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 문제이다.. 개인의 은사체험이나 신비체험을 극대화 하여 능력을 과시하고, 자신이 신적 세계와 직통하는 것처럼 신도들을 미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예언기도 제단의 금요철야 기도회나 기도원의 은사집회 등에서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치 무당의 신내림과 같이 ‘예언’을 빙자한 신비주의적 계시를 복음인양 쏟아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꿈이나 환상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천사를 말기도 하고, 성령의 직접적 만남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낮은 형태의 이런 신비주의는 유럽 교회의 영혼의 성화를 위한 신일합일의 신비주의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저급한 기복주의적 신비주의이다. 신비체험은 영혼의 상승과 신앙의 도정(道程)을 위해 필요한 것이어야 하는데, 세속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급한 신비주의가 보편적 교회의 정통성을 해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성경을 자의적으로 끌어다가 해석한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게 되고 복음이 변질되게 된다.
<강춘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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