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

5. 개혁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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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공부하면 새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성경을 연구해보면 오래 전 옛적에 하나님께서 인간(죄인)이 죄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이치와,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원리를 상세하게 말씀해 놓으셨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변동될 수 없는 성경의 진리나 원리가 왜곡되고 변질되어서, 성경이 가르치는 원래의 뜻을 벗어난 교리나 관행이나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교회에서 통용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중세교회의 말틴 루터의 개혁이라는 것도, 어떤 새로운 교리나 제도나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로마교회의 왜곡된 교리나 제도를 성경의 원안대로 돌려놓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래서 그의 개혁의 모토는 ‘오직 성경’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개혁’이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했거나, 사람들 마음대로 고친 것들을 원상대로 복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원의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구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기초로 하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첫째, 죄인이 어떻게 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는가? 들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셋째, 그리고 실제적인 구원과 영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원리와 방법은 사람이 연구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육을 받았다(신 5:15 참조). 6일 동안 내리던 만나가 7일째에는 멈추었고, 그 날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시내산 앞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 현현(顯現)하시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집약한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이다. 얼마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비를 보관하는 법궤와 함께 성소가 건축되었는데, 그 성소의 구조와 제도 안에 구원의 원리, 성도의 생활,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상태가 설명되어 있었다.
(1) 뜰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칭의)-성소는 뜰, 성소,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장소인 뜰에서 죄인이 제물(양)에게 안수하므로 자신의 죄를 전가(轉嫁)한 다음, 죄를 뒤집어 쓴 양이 번제단에 불태워지는 의식을 통해서 죄인이 의롭게 되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죄 없는 의인에게 전가시키므로 자신이 타의에 의해서 의롭게 되는 것을 칭의(稱義)라고 한다. 뜰의 번제단과 성소의 입구 사이에 위치한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소를 출입하며 손과 몸을 씻는 곳인데 영적인 의미로는 침례(세례)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뜰은 죄인이 어린 양이 표상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장소이다.
(2) 성소에서 구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성화)-성소 안에는 떡상과 향단과 촛대가 있다. 뜰에서 구원을 경험한 성도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떡상)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기도(향단)를 통한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촛대 안에 들어 있는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고, 기름을 연료로 해서 타오르는 촛불은 성령의 역사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변화되는 모습으로 이웃들에게 빛이 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대체로 이 성소의 단계에서 좌절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화(聖化)의 신앙이 심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개혁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개혁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변화되어 예수를 닮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의 기초를 이룬다.
(3)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영화)-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는 쉐키나 영광의 형태로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다. 1년에 하루 7월 10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경에 수백 번 언급된 주님의 재림의 날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분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 날에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요일 3:2)이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주님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즉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고전 15:51)될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을 만나서 살게 될 영광스러운 변화를 ‘영화’(榮化)라고 한다. 이것은 ‘개선’이나 ‘개혁’을 넘어서는 ‘개벽’이다.

개혁의 지표-계명
위에 언급한 성소 제도의 전반적인 의미는 이렇다. 뜰에서 이루어지는 칭의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이것은 구원을 받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오직 믿음만 행사하면 되는 것이지, 인간측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재림 시에 있게 될 영화 역시 순식간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러나 ‘성화’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서 평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다. ‘칭의’가 갓난아이로 태어난 상태라면 ‘성화’는 그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이미 얻은 구원’(already)을 기초로 해서 자라나며 성숙해지다가 ‘장차 얻을 구원’(not yet)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하였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지향(志向)해야 하는 지표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쉐키나), 혹은 존재의 기초(시 97:2 참조)로 자리 잡고 있던 지성소의 법궤 속에 들어있는 십계명(도덕법)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십계명은 폐하고 ‘사랑’으로 대치되었다고 말하는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개혁교회 신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9장 ‘하나님의 율법’ 5항에는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도덕법의 이 같은 의무를 전혀 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시킨다”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도 친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 5:17)고 하셨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한 부자 청년이 구원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권면하신 바 있다.
필자가 ‘개혁’과 관련하여 ‘율법’ 혹은 ‘계명’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나 성도들의 생활이 늘 변질되고 부패하여서 ’개혁‘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자의(自意)대로 살아가는 것이 쉽고 편한 인간의 죄된 본성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치리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 왕들은 모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율법을 기준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바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개혁하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명하신 법도와 계명을 깊이 살펴서 그 원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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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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