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제48회 총회장 이수현(李守鉉) 목사
2017/05/04 11: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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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군산지역 복음의 밑거름이 된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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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군산 출생
이수현(李守鉉 1895.5.8-1984.5.28) 목사는 전북 군산시 구암동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나이 7세 때에 부친을 여의고 12세 때 군산(群山)에 있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소속 해리슨(Rev.W.B. Harrison, 1894~1928 河緯廉)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입신하게 되었다.
하위렴(Harrison) 선교사는 군산에 오기 전 서울에서 어학을 익힌 후 전주에 파송되어 오늘의 신흥중고의 모체가 된 아이들을 모아놓고 주간학교(Weekly School)를 개설, 청소년 교육에 헌신했다.
1898년 같은 군산지부에서 활동하던 데이비스(Miss. Martha. V. Davis)와 결혼, 부인은 전주로 옮겨 아이들과 부녀자 및 병든 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본인은 군산에서 장터전도에 매진하였다. 1903년 부인이 사망하자 계속해 군산과 목포지역을 오가며 선교사역을 훌륭하게 감당하다가 1928년 과로로 인해 미국으로 귀국한 후 생을 마감하였다(내한선교사 총람, 김승태 박혜진 편(1884~1984), 한국기독교연구소 1994, p.256).
수현 소년은 선교사의 손에 이끌리어 14세에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었다. 해리슨 목사의 주선으로 군산영명학교를 마치고 광주도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순천매산학교 교사로 부임해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1916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탄압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근속하였다.
이후 일제의 학정에 견디지 못해 만주로 피신하여 그곳에 있는 만주신흥군관학교에 입학, 조국광복의 꿈을 꾸며 공부하면서 한편 봉천에 있는 한인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그후 귀국하여 평양에 있는 기독교 계통 학교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 1918년 2월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가 경찰당국에 의해 다른 동료 24인과 함께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구금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해방 후 이로인해 건국 대통령 이승만으로부터 특별 표창을 받기도 했다.

만주신흥군관학교 거쳐 독립운동 가담
서대문형문소에서 옥고
평양장로회신학교 졸업, 전남노회서 목사안수
부흥사로서 국내외 초청집회 활동
36년간 군산에서 목회

이때부터 이수현 목사는 자신을 드려 일생동안 전도사업에 일생을 헌신하기로 결심을 했다고 후일 밝인 바 있다. 그는 곧 평양장로회신학교로 가서 교역의 길을 준비하여 입학해 열심한 결과, 1925년 평양신학교를 제28회로 졸업하였다. 동창생들의 면모를 대강만 살펴봐도 길진경 김방호 양화석 이기혁과 같은 한때 한국교계를 움직였던 지도자들로서 기라성 같은 어른들인 것을 한 눈에 알아 차릴 수 있다(야소교장로회연감, 1940 야소교장로회총회 발행 참조).
졸업한 그 해에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광주중앙교회로 부임하였다. 1929년 마산문창교회로 전임했다가 1931년 순천중앙교회를 거쳐 군산 개복동교회와 군산중앙교회에서 23년간 시무하였다. 그는 독립운동에 관계한 연유로 해방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선전부장과 문화부장을 역임하였고, 5.10선거 당시에는 군산지구 선거위원으로 봉사한 바, 건국공로자로 군산시장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매년 성탄절 때는 군산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5공군 부대에 성가대를 동원 위문한 공로로 미 제5공군 사령관의 표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교육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광주에서 사범학교를 나온 덕에 순천매산학교 봉천동하현 한인학교, 평양순덕학교 등 교사로, 광주 숭명학교에서는 교장으로 봉직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수, 순천, 부산, 서울, 평양, 신의주 등 부흥사로도 전국을 향해 뛰며 한국교회 지도자로 봉사하였다.
일본, 동경, 대만, 중국 서탑교회 등 수많은 집회초청을 받아 활동하였고, 광주 도제직회 회장을 비롯, 군산 NAE회장, 순천노회 주일학교 대회장, 순천노회 조선선교 50주년 기념대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전남노회장, 순천노회장, 전북노회장, 군산노회장과 평양신학교 이사와 군산 맬볼딘여학교, 군산영명학교 이사를 역임하였고, 군산YMCA 회장으로 대사회 봉사의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와같은 다양한 교회 내외 단체에서 행정경험을 쌓았고 교정(敎政)의 경험을 맡았다. 드디어 1966년 9월 19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숭동교회에서 모인 제48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의 자리인 총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는 총회장이 되기 전 총회 안의 여러 부서에서 진심어린 봉사를 마다하지 않았다. 총회 협동총무로, 총회 전도부장, 부총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군산중앙교회를 은퇴하면서 원로목사로, 노회에서는 공로목사로 추대받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기독교대백과사전 제12권, 한영제편, p. 1255 참조).
그가 오래 섬기며 목회했던 군산중앙교회를 개척 설립하면서 회상한 글 한편이 남아 있어 여기에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처음으로 군산에 올 때 기억을 그는 이렇게 썼다. 경성에서 장항선을 타고 달리면 열차는 장항역에 도착한다. 장항역에서 연락선을 타고 도착하는 곳은 군산항이다. 한국 서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유명한 군산은 옛날 백제 의자왕 때 나당연합군에게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패하자 3천 궁녀가 백마강에서 몸을 던졌다는 그 백마강이 흘러 들어오는 곳이 군산이다. 민족의 피비린내 나는 망국의 역사가 스민 광경을 지켜보던 역사의 시간은 흘러갔을지라도 그 흔적을 어찌 잊겠는가?
이러한 숨막히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기독교 복음의 사자들이 찾아들어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결과 이곳저곳 언덕받이에 교회들이 드러선 5대 항구도시로 발전한 고장이다.
이수현 목사는 전도자일 뿐 아니라 그는 음악도 좋아해 목소리도 곱고 찬송가를 잘 불러 음악가 목사로 알려져 있었다. 위에 기록된 군산을 비롯 여기저기 목회를 했으나 결국 45년의 목회활동 중 36년 간을 고향 땅 군산에서 목자의 역할을 했으니 그에겐 군산에서의 회포가 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건물없는 군산중앙교회에서 그가 당한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한민국 온 민족이 기다리던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블어 군산지역에도 여러 개 교회가 여기저기에 개척설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수현 목사 역시 개복동교회를 사면하고, 1947년 4월 20일 중앙교회 개척을 결심하고 맨손 들고 개척을 시작하였다. 주일이 되면 건물이 없어서 산과 들을 찾아 장소를 옮겨가며 예배를 드리고 잔디밭에 머리를 처박고 피눈물나는 하소연의 기도를 드리며 예배를 드렸다.
교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군산시내에는 높고낮은 집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데 왜 우리에겐 저런 건물을 주시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기도하고 마음놓고 예배할 수 있는 예배당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교인들의 기도를 듣는 목사의 마음은 더욱 간절하게 하고 서글프게 하기도 했다.
맨손으로 개복동교회를 나와 몇몇 교인들이 울부짖던 기도로 교회를 세우게 되었으니 그간의 노고를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함께 교회를 이룩하기까지 고생했던 교인 중 심학륜이 장로가 되고 지금은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이금은 임정덕 장로 등이 기도와 봉사의 밑거름이 되어준 것에 대해 늘 감사하고 있다. 이 목사를 도와 함께 개척한 초기 신자들이 오늘 중앙교회 이곳 저곳에서 믿음의 기둥들이 된 것에 대하여 평생 감사할 조건이라고 이 목사는 회고하였다(한국기독교대사전, 박용규편, 성은출판사 1978, p.666~668참조).
그가 재임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8회 총회 중요결의안을 살펴보면, ① 개혁파 교회 세계대회에 본교단도 가입하도록 결의하다. ② 정치 제12장 2조 총회총대 10당회에서 목사 1인 장로 1인을 7당회로 개정키로 하고 각 노회에 수의토록 하다. ③ 총회창립 50주년 기념화보를 발간하기로 하다. ④ 문교부에 사회단체로 등록해 정식으로 허가받기로 가결하다.
이수현 목사는 전도자로, 독립운동가로 지역사회 지도자로, 교단의 지도자로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봉사한 교단의 지도자로 헌신하다가 1984년 5월 28일, 89세의 일기로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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