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대를 보며 인간의 삶의 자리를 살핀다 2
2017/07/14 15:4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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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힘든 유혹(뇌물)과 함께 요청이 오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할 때 무엇이 그 잣대 노릇을 할까? "모래위에 집을 짓는다던가?" "밑이 빠져 새는 물통"처럼 헛수고는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 제일주의와 권력이라는 등식관계를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사회 제도 속에서 권력 남용이라는 인식의 현실에 시달려 왔다. 가치가 혼돈된 시대에 방황하는 국민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인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개혁의 방향은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의식 개혁이 먼저 더 중요한 정치 현실임을 주지한다.
오늘의 정치의 위기는 잘못된 가치의식과 그 규범에서 유래된다고 본다. 양심의 빈곤, 윤리의 타락, 질서의 굴절이라는 정신적 질환은 '정의 보다는 불의, 신뢰 보다는 불신, 질서 보다는 무질서가 속출하는 처절한 사회현실'을 보게 한다. 삶의 가치는 반드시 정로(正路)를 걸어가야 얻어진다. 정치가 진실과 정의와 인권과 박애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자기이권을 중심으로 음모를 일삼는다든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국민을 기만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결과는 허무와 몰락 일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자기의 양심과 신념, 신조를 속이지 않고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범한 아량을 보여주며 진실을 말해 주는 자세는 존경받는 생활 자세이며 영향력을 가진 몸가짐이라 할 수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합리적 판단과 소신에 따라 결정을 행하려고 하는데 이에 다른 결정을 내려 주도록 자기와 친한 동기 동창생이 혹은 친척이 혹은 고향 친지가 부탁해 오는 경우에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힘든 유혹(뇌물)과 함께 요청이 오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할 때 무엇이 그 잣대 노릇을 할까? "모래위에 집을 짓는다던가?" "밑이 빠져 새는 물통"처럼 헛수고는 말아야 한다.
화이트헤드(A.N.Whitehead,1861-1947)는 "과정신학"을 신학에 적용하여 인간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제시함을 알게 한다. 이는 인간과 공간의 삶의 관계가 내면적이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조정함과 동시에 행동하는 것으로 공간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사실과 의미를 갖게 되고 사물에 있어서는 사실공간, 자연공간, 인간적 공간으로 그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있어 인간은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마음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지금에 와서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창조 우주세계를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보게 하는 통찰력으로 그 신앙을 갖게 한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공유하는 '우주공동체 의식'을 제공하는 신앙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깨닫게 하는 영성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삶'으로서 우리는 우주와 만물을 단순히 물질의 세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살펴서 함께 살아가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구원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심의 하늘의 뜻을 알게 한다. 이를 "하나님의 시간에 붇둘린 삶"이라 한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피조물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주전체와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지음을 받은 몫이 있는 삶의 피조물임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모두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 삶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의 삶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을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 붙들린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깨달아야 한다. 이는 곧 인간이 모두 영원한 시간 안에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한 시간 안에 잠입해 있는 시간과 역사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항상 그 삶은 종말을 보고 산다.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문화로 옷을 바꾸어 입고 시절에 따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으로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삶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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