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한 예수교회-53
2017/07/27 11:2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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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스가 유대인들을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명령을 내린 것에 관하여, 구약의 서기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고레스’라 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대관식을 갖는 통치자에게 항상 붙여온 칭호였다. 이 칭호에 관련해서 오늘의 21세기 통치자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특별히 불릴 만한 이름이 있다면, 이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 일 것이다. 그녀는 백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여 독일의 인구 감소를 해소하고, 일할 수 있는 젊은이들과, 차세대의 든든한 기반이 된 어린국민들을 갖출 수 있게 하였고, 인류 역사상 100만이나 되는 난민을 자국의 시민으로 모두 수용한 정부와 국가가 지금까지 없었으니, 참으로 온 세계에 귀감이 되는 인류애의 공덕을 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평생 선포해야할 직무를 지닌 자라면, 모든 인민을 구원으로 초대하고, 저를 믿는 자에게 천국시민권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왕국의 통치자로서 등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 대사의 선언문인, 로마서 서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바울은 단순하게 사람의 구원을 다루려고 로마서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로마서의 가치를 개혁자들의 가치관과,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시대적인 토픽 관심사에 머물다가 보니, 온 세상에 미치는 ‘하나님의 복음’이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퇴색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제도적인 교회를 굳히기 위해서 성경을 왜곡하고, 교회론적인 성경 해석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들을 교회를 위해 사장시켜 왔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는 새로운 교회들도 역시, 한 편으로 치우친 교회론적인 성경해석에 중심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난당한 자가 그 지경에서 잠시 벗어났다고 해서, 더 크게 둘러싼 세속적인 미로에서 쉽게 빠져 나온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듯이, 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왜곡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질 못하였다.
바울이 선언한 ‘하나님의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이 복음은 ‘바울의 복음’이 되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의 복음’의 미션을 받으신 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속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 아버지 보좌 우편에 등극하시었다. 이를 칭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하였고, 혹은 ‘십자가의 복음’이라 하였으나, 거의가 구원론에 편중되었을 뿐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사도의 직임을 받은 이후, 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평생 자신이 전해야하고 믿고 실천하는 ‘바울의 복음’이 된 것이다. 바울은 평생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는 이 책무에서 벗어나질 못하였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모세 오경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유대 서기관들은 모세 오경을 모두 한권으로 인식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려면 출애굽기 하나만으로는 불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을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로만 인식하는 데에 그친다면, 아마도 2차 대전에서 빚어진 600만 홀로고스트 현장에서 벗어나질 못할 것이다. 최근에 우리 한국교회는 세월호가 바다에서 전복되자, 그 선박을 운영하는 단체와 꼬리 자르는 일에만 급급했다. 한국교회는 한 이단 종파의 구원론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결과가 오늘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전이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이미 맛을 잃은 소금 같이 되어서, 세인들에게 짓밟힌 지 오래다. 육백만이 희생된 유대인들마저도 우릴 꾸짖을 명백한 신학적 오류들을 잘 알고 있고, 세인들마저도 공개적으로 우리 꾸짖는데, 우리만 우리의 잘못을 아직도 바로잡질 못하고 있다.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의 복음’이란,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되신 예수의 피로써, 죄 값을 지불하고 산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부여하고,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책무를 맡기고,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주어 참여케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알게 되는 광명의 빛’을 그의 마음에 비추임 받은 이후부터는, 하루도 그를 부르신 주님에게서 빚진 자로서의 책무를 잊은 적이 없다. 바울이 이방인을 구원하여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었듯이,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이다. 우리는 주님의 복음으로 초대된 자들에게, ‘당신을 부르신 그리스도의 부름은 무엇입니까?’의 질문에 대답하고, 순종하는 시민이 되도록 더욱 훈련에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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