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승천과 파루시아
2017/08/11 10:3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1.jpg
 5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하신 날로서 부활한 지 40일이 되는 날로 하늘로 올라갔다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갖게 한다. 신약 성서에서 보면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가 부활한 뒤 40일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가 그들이 보는 가운데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려갔다고 기록 되어 졌고 요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서도 승천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승천의 의미는 예수의 죽음과 그가 부활한 뒤 승천했고 영광을 받으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 그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는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승천 축제는 4세기 이래로 동서양이 모두 부활절 후 40일이 되는 날에 베풀어진다. 승천의 신학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모든 이들에게 내려지는 최종적인 구속의 행위, 즉 그리스도가 “하늘로 오름으로 그가 우리를 하느님과 고난과 기쁨을 함께하는 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의 승천’은 초대 교회에서 세례때 사용하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도 언급되어 있다. 승천 축제는 그리스도교도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부활절. 오순절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 왔으나 4세기 이래로 동서양이 모두 부활절 후 40일 되는 날에 베풀어 행사 되어 왔다. 그러다가 중세기에 와서는 승천 축제는 보다 적극적이고 시각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 행사 진행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와 함께 감람산에 올라갔던 것을 흉내 낸 행렬, 십자가를 세우는 것, 교회 지붕을 통해 부활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올리는 것 등이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서양에서는 승천을 다룬 최초의 작품은 예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구름으로 부터 나타난 하느님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그리스도를 옆면에서 그림 그리는 것으로 11세기 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예수의 승천”은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미술의 주요한 주제였고 두 시대 미술 모두 그리스도가 그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는 성상화를 담고 있음을 보고 오늘의 교회의 행사에 “예수 승천”의 의미부연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음에 본래 신앙의 특색을 드러내지 못함에 무색할 뿐이다. 여기에 오늘의 교회가 예배갱신으로 세 가지 의미가 따른다. 교회의 예배는 교회의 전통 예배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는 예배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 전통은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바탕에서 그 의미를 갖게 하기 때문이며 예배의 질은 세계교회의 공동의 예배 유산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폐쇄적인 교파주의 예배전통을 지양하고 전통의 유산을 확인해 가야하며 이 세계 지구촌에서 개교회가 직면한 상황문화를 창조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할 교회의 교회력에 따라서 진행해야 할 당위적인 교회의 현실에서 찾아 진행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과 승천을 달리해 왔다. 이는 승천절을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중간에 위치하게 하면서 현존 하시는 그리스도를 지시하기도 하고 성령 강림이 승천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건임을 시사해 오기도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아는 것은 영원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신학적 인식을 알게한다. 사실 승천이 현대 신학에서 무시 받았던 것도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신앙의 실천에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미에서 성찬 및 예전의 의미를 현존 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에서 조명만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행위를 일상의 우리의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 행위를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신앙”만이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신앙임을 알게 한다. 여기에 주지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예배는 짜여진 공간에서 길들여져 있고 예배의 본말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천하심은 주님 예수님의 영광스런 강림과 연계에 있음을 믿음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승천예배도 지켜져야 한다. 승천 없는 ‘강림’은 없다. 가셔서 오시는 분은 선과 후의 약속이다. ‘강림’으로 번역된 헬라어 ‘파루시아’는 “가까이 하다, 옆에 있다, 도착했다, 참석하다, 준비되다”의 뜻을 가진 의미는 ‘가까운, 곁으로 부터, 근처에, 근사하게, 존재하다. 발생하다, 현존하다’의합성어에서 유래된 ‘파루시아’그리스도의 강림은 이미 이루어져 함께 있는 ‘현존의 의미’ 승천의 기약을 알게 한다. 즉 하느님의 구원의 열심으로 인하여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자(갈2:20)에게 있어서 이미 그리스도의 강림이 이루어진 ‘파루시아’를 알게한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