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이유가 없다
2017/09/29 10: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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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인간에게 이용 가능한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에게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영이 자연 속에서도 활동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자연 과학자들이 ‘창발적 진화’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 신앙으로 보면 하나님의 ‘내재성’의 입장을 알게 하여 ‘내재적 초월’을 자연으로 하여금 이를 보게 한다. 흔히 가을을 단풍계절의 풍경만을 보는 관광객도 있지만 열매를 거두는 수확의 기쁨을 만끽하는 의미도 있다. 가을은 살아 익은 열매를 보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기능적, 기계적 가치를 우선하는 세상이 되어 가면서 이러한 가치로 우대받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테크놀로지의 이데올로기가 보편화되어 이러한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음을 알게 한다. 예컨대 사람을 양육하는 인간교육도 학교교육에서 배제된 채 그 교육은 기능적 인간을 양성하는 학교로 변신해 가고 있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조가 인간미가 풍성한 사람보다는 공부 잘하는 지식기능사를 요구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 한다. 이러한 기업은 기능적 인간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출세와 승진을 위해서는 수단방법도 개의(介意)치 않게 된다.
이러한 현상인 자본주의 사회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가치를 우선하기 때문에 치열한 생존경쟁을 정당화로 인식하고 살고 있다.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모든 것을 부(富)의 창출과 증식이라는 돈벌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제주의적 가치관이 되고 말았다. 이 돈벌이는 경쟁력, 효율성, 생산성 등을 적극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본래의 경제이념을 상실하고 자유경쟁을 유도하여 삭막한 삶으로 생활을 이끄는 현상이 되고 만다. 사실로 본래의 경제관 이해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으로 이를 성사 시키는 것으로 경제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감사’라는 본래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은혜의 고마움에 비롯된다. 그리하여 ’감사의 마음’은 ”이유가 없음”을 알게 한다. 감사는 감사해야 할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는 사랑의 보답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천하 만물을 공간과 시간의 전체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에 그리고 생명의 아버지이심의 그 까닭을 아는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에는 아무 이유나 조건이 아닌 사랑의 관계이듯이.
그럼으로 그 관계의 나타남은 감사와 은혜뿐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항상 조건반사적인 태도이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동물이 그의 환경에 적응하려고 후천적으로 가진 반사작용과 같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그런 조건반사가 아니라 정녕코 감사는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는 인사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죄 사함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 은혜가 바로 그것 이치를 알게 한다. 이는 곧  ’은혜’라는 그 깊은 뜻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다. 즉 회개할 때 모든 죄를 덮으시는 죄 사함의 은혜요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은혜이다.
여기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활의 태도로 사랑의 교제 속에서 범사에 대한 믿음의 인사(人事)가 있다. 인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이며 은혜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할 마땅한 일인 것이다. 그리하여 감사는 사람끼리 관계를 갖는 생활에서 기본적인 인사가 된다. 이런 일을 감안하여 보면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감사의 인사가 없는 무심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은 ’인간 중심주의가 아니라 하느님, 인간, 자연과의 생명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인간 사이에 불신과 반목이 생기고 인간 사이의 관계가 상실이 되면 자연을 황폐케 한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땅이 인간에게 엉겅퀴와 들풀들로 서로 엉키듯이 인간이 하는 노동이 저주받는 노동이 되게 하고 반면에 인간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창조물을 보전하며 인간의 신뢰도가 창조질서를 회복해 가면 여기에 땅에서 강물이 흐르고 온갖 들판에서 과실이 맺는다는 것으로 창조의 증언으로 실증이 되어 이것이 성서의 증언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맥추절 감사 절기를 지키는 것은 땅이 자연적으로 소출을 낸 것에 대한 감사이고 이것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징표로 믿었던 그 믿음을 여기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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