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한 예수교회-59
2017/10/13 14:1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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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기기선이 발명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서 미 대륙으로 이동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 일로 인해서 인간이 그가 속해있던 집단이나 사회제도에 얽매여 있던 신분에서 벗어나서, 그 스스로가 수고하고 노력한대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었다. 개인의 소중함이 기지개를 피기 시작하였고,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었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들을 갖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시작된 이동이, 개인의 자유를 얻는 길이 되었던 것이다. 그 세상에 새로운 질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지난날 산업물자를 이동시키고, 사람을 이동시키던 대형 기선들이 인간의 문명을 새롭게 일으키게 되었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오천 명이나 팔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크루즈 선을 타고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각 지역의 문화를 탐방하고 즐기는 여행객들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여행객들에게 가장 커다란 문제는, 한 주간 혹은 두 주간 여행을 즐기려면 뱃멀미를 피해 갈 수 없었는데, 이 문제가 사업자들에게는 크나큰 부담이었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맨 처음 발명된 기술은, 배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자이로(gyro) 장치이다. 이러한 장치는 오늘에 와서는 항공기에도 응용되고 있고, 지진 설계에도 응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이로 장치를 배 아랫부분 양 쪽에 설치하는 데에 드는 시설비용이나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력에 부담이 되었다. 거대한 기선의 무게에도 부담이 되었는데, 이것을 간단하게 해결해주는 신기술이 생긴 것이다. 배 아래쪽에 비행선과 같은 양 날개를 달았더니, 대형 선박이 파도와 진동을 이겨내는 데에 효율적이었다. 이로 인해서 선박 운영자나 이용객들은 경제적이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는,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커다란 위험이 항상 기다리고 있고, 다양하고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힘쓰고, 끊임이 없는 연구와 새로운 기술들을 익힘으로서, 자신들의 고객인 여행객들에게는 편안함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서는 즐거움과 행복을 서비스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험악한 환경에서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란, 무엇보다도 항시 사회적 안전을 가져오게 하는, 균형을 유지하는 기술과 장치일 것이다. 사회적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아주 작은 위험에서 조차도 세월호처럼 전복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호의 전복 사건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리는 없겠지만, 이를 운영하는 책임을 맡은 사회적 구성원의 도덕 지수와 감정 지수도 지능 지수만큼 높아져 있어야만, 보다 안전한 항해가 이뤄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항시 불안의 상태가 가중되게 되면 기존 질서는 무너지게 되고, 새로운 질서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는 이에게 사회적으로 권위를 보다 많이 부여 받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법조계이다. 이 집단에 부여된 권위만큼 더 큰 권위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국민들로부터 부여된 권위만큼 법조계 집단의 통합적 지성도 탁월하다면, 시민들에게 전반적으로 신뢰와 안전을 구축하는 커다란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저울을 잡고 있는 집단이 도덕성이나 감정지수가 시민들 보다 낮다면 그 사회의 질서는 세월호 만큼이나 신속하게 전복되어질 것이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는 넓은 길로 가질 말고, 좁은 길로 가라’하신다. 이는 우리게 항상 새로운 길을 닦으라는 말씀이리라. 어느 위인이 잠시 세속을 떠나 천국과 지옥을 여행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가 지금까지 길들여진 잣대로 생각되던 고정 관념이 무참하게 붕괴된 것이었다. 천국에 있어야 할 분들이 지옥에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다행히 그가 다시 세상으로 나왔는데, 그는 남이 보질 못하는 새로운 저울과 지식을 갖게 된 것이었다.
왜 아브라함은, ‘네가 사는 곳, 아비와 친척과 논밭을 버리고, 그 도시에서 떠나, 야훼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어야 했을까? 이때부터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때를 바라고 멀리 나가게 되었는데, 이를 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은 나의 때를 보고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하시는 말씀은 곧,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라는 뜻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어서 한쪽으로만 공이 구르고 있고, 우리의 자녀들이 지나치게 오염되어 있는 교육환경과 제도, 원수 갚는 일에만 집착된 세속에 익숙 되어 가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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