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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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평범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는 인간적 노력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유교나 무속 문화의 유물이 성의와 정성을 기독교가 모방하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진정한 열심의 의미는 ‘예수님 안에’ 라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우리식 해석으로 맹종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마음속에 예수님이 와 계신 것이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의 관계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미입니다. 忠(마음 중심에), 誠(말씀이 이루어지는 것).
예수 믿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공력이나 수고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소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금욕이나 극단적인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리고 함께 사셨던 그 자체입니다.
‘냉수 한 그릇’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아주 좋아 보이는 그리고 그럴 듯한 것으로 누가 보아도 좋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한국적 체면과 명분이 예수님의 아주 미미한 자연스러움을 무시하는데 사로잡힌 것입니다.
귀한 것을 보는 시각적 평가가 상실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한 당연한 일이나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여인이 값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값 비싸다는 것은 함께 보고 있는 사람들의 계산 방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허비한다는 마음이 아깝게 생각하는 인간적 욕심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산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있던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값으로 계산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내가 소유할 이유도 없고 더 좋은 것을 가지게 된 벅찬 기쁨이 귀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불필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소중함을 갖게 된 이 여인의 행동에 감동하신 것은 이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감격된 일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한 행동이 기특하다는 것보다 예수님과의 진정한 관계를 느낀 사람에 대한 표현입니다.
베드로에게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씩이나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선언하는 그의 깨끗한 마음가짐입니다.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의 어설픈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정교한 형식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섬김의 방법을 말씀하신 적 없으십니다. 오늘 이야기도 ‘냉수 한 그릇’입니다. 설탕을 얼마큼 탔느냐, 좋은 그릇이냐도 아닙니다. 접시에 받쳐서 기본적 예의를 지킬 것도 요구하지 않으심입니다. 그물이 정수된 것이나 정수기 필터를 정기적으로 바꿔 주었느냐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웃과의 만남도 오다가다 만날 수 있습니다.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다면 있는 대로 없으면 생수 한 컵이라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길가 벤치에서 그것도 없으면 그냥 서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상적 존재가 아닙니다. 그분은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에게 함께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화려한 의식을 벗어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고 용기를 내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격식과 체면치레입니다. 이것은 불명예스러운 유교와 무교의 유산들입니다. 그리고 이방 종교의 찌꺼기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문명의 충돌이란 말을 사용합니다. 할 필요가 없는데 하려고 애쓰는 일, 물은 물로서인데 따뜻하게 데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수단 방법이 긴박한 갈증이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상처는 현대적입니다. 그런데 회의를 거쳐서 예산 지출과 방법을 연구하다가 상처는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진행형이 아니라 순간형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에 대한 갈등입니다. 교회도 고정관념과 순수성의 충돌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시대는 있는 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노출하는 시대입니다. 즉 솔직의 세대입니다. 인간의 본심의 순수함을 원하는데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도록 의식에서 만들어진 위선에서 갈증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뻔히 드러날 줄을 알면서도 거듭된 거짓으로 모면하려고 애쓰다가 개망신을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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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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