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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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화려한 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선교나 전도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리에서 삶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만물까지도 우리가 마구 대할 대상이 아닙니다.
행사나 축제를 위한 도구들이 아닙니다. 목사가 목회 성공을 위한 소모품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양심적인 자기 한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나의 신앙적 보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1절부터는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지 말라.
사람들 앞에서 구제하지 말라.
사람들 앞에서 금식하지 말라.
이런 사람은 이미 세상에서 상을 받았다.
이들에게 이어서, 선지자 노릇을 했고, 귀신을 쫓아냈고, 권능을 행했고, 내가 한 것을 자랑하였고, 23절에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율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율법은 자기 자신의 완벽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보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조건 관계에서 오는 인간의 죄성에서 출발된 대가를 기대하는 그런 보상이 없습니다.
조건에 의한 목회는 목회가 아닙니다. 목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명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불안은 자기 행위가 보상을 목적으로 한 결과일 뿐입니다.
목회자의 불안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는 상 받으려고 축복받으려고 건강해지려고 잘되려고 성공하려는 이방 종교가 말하는 조건에 의한 열성이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했더니 지금 같은 보상을 누리는 것이다고 간증한다면 그 즉시 예수님께 내어 쫓김을 당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31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왜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나 신학적으로 전통이라고 하는 사람들 눈에 왜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지 않을까요.
목회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지극히 작은 자. 너무 흔한 대상이요 발에 채일 정도로 깔려있는 작은 자인데 보이지 않을까요?
작은 자를 찾아 헤매는 목회자는 고통입니다. 자기 집 추녀에 걸린 파랑새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고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자들의 삶은 어렵습니다.
아주 쉬운 일인데 왜 고통이요 고난이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회에 대한 큰 기대와 기적 같은 역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가난으로 하시는 일도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을 통해서 하시기도 하지만 바보를 통해서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 중에 세상에서 대접받는 일도 있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목회는 많은 군중 앞에서는 신나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의 숫자가 적은 데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보이는 사람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쪽팔림’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많은 사람에게 신뢰받고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작은 가정이나 자녀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신을 받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런 실제적이고 가장 문제의 근본임에도 불구하고 관심도 없는 것이 한국적 보이려는 시각중심의 사회 속에서 사는데 아무 부담을 느낄 수 없도록 단련된 모습이다. 목회 성공이란 가치관에 대한 문제가 목회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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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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