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본고는 지난 2월 9일 영동교회에서 열린 한복협 2월 월례회 ‘한국교회가 힘써서 하여야 할 일들은?’에서 정현구 목사가 발제한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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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온전한 복음의 재발견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온전한 복음이다. 한국교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의 깊고 온전한 내용을 총체적으로 잘 이해하고 전해야 함에도, 도리어 복음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왜곡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교회는 한편 한국사회 속에서 깊이가 없는 종교로 각인되고, 이단들이 생겨나는 토양을 만들었고, 교단분열을 야기시켰다.
복음에 대한 기복주의적 이해는 시대의 우상을 간파하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에 굴복하게 만들었고, 구원을 개인구원과 인간구원으로 축소 해석함으로 사회 변화에 대한 책임과 자연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간과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복음의 세상 변혁적 비전과 역동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교회는 마치 이스라엘 왕의 비위를 맞추었던 궁중예언자처럼 되었고, 교회는 변화되어야 할 세상을 도리어 유지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복음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 대조적 비전을 잃어버림으로 복음이 좌우의 진영논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도리어 양 진영의 우산 속으로 초라하게 들어가 갇혀 버리는 안타까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복음을 단순한 인간화나 휴머니즘으로 왜곡하는 자유주의적 이해는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약화시키기도 했다.
세상의 여러 잡음과 소음의 소리는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교회가 복음의 원음을 회복하고, 그 원음이 주는 감격과 감동을 경험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소망을 찾기 어렵다. 복음의 온전하고 총체적 이해를 회복하고, 그것을 강단에서 증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개혁도 온전한 복음의 발견에서 이루어졌듯이, 지금 교회의 회복도 복음의 재발견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II. 교회의 신뢰 회복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교회의 신뢰도 회복이다. 교회의 신뢰도 하락과 복음에 대한 불완전한 혹은 그릇된 이해는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 메시지가 얕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수준을 뛰어 넘는 깊고 높은 차원임을 보여줘야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슈들에 대해 교회는 설교나 강의를 통해서 기독교적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세상보다 더 성숙한 관점 보여줄 수 있다면, 적어도 상식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교회는 신뢰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란 이름으로 전해지는 균형을 잃어버린, 피상적인, 얄팍한, 독선적인 주장들은 복음의 수준을 떨어뜨리게 했다. 목회자들이 복음과 성경적 관점에서 시대의 이슈들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여러 수단을 통해 돕는 것이 필요하고, 시대의 여러 이슈에 대해서 다수의 교회가 성숙한 견해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보다 높고 성숙한 견해를 표명할 뿐 아니라, 더 고상한 윤리적 삶을 보여줌으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도를 잃어버리면 작은 전투들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결국 큰 전쟁에서는 질 수 밖에 없다. 교회라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세상과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면, 그런 위기들은 오히려 교회의 참 모습을 세상에 보여줌으로 교회를 살리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세습, 설교표절, 성적 문제, 재정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수준 낮은 반응들은 그런 기회들은 대부분 위기가 되게 만들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그것을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이 매우 힘들고 긴 시간을 요구한다. 지속적으로 삶의 어려 문제에 대해 복음적으로 대응하고, 더 높은 견해와 성숙한 삶을 보여줌으로 신뢰도를 다시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III. 왜곡된 신앙의 관습의 갱신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교회 안에 고착된 비성경적 행태들을 찾아내고 고치는 것이다.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고, 십일조와 헌금을 복을 받기 위한 하나님을 향한 투자(?)로 가르치고, 술·담배하지 않는 것이 곧 좋은 신앙인의 표지처럼 이해되고, 예배는 주일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으로 축소되고, 제자가 된다는 것이 교회 안의 좋은 구역장이 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등의 교회생활에 관한 잘못된 개념과 습관이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런 그릇된 관습들은 신앙생활을 주일과 교회당이란 종교적 시간과 공간영역으로 국한시키고, 영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을 구분짓는 복음의 이원론적 이해에서 나왔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고, 신앙은 사적 종교생활의 한 영역에 갇히게 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복음이 종교가 아니라 삶과 세계를 포괄하는 세계관임을 알게 해줌으로 교회 문화에 대한 전반적 갱신이 필요하다.

IV. 교회 지도자의 각성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교회 지도자의 각성이다. 교회의 문제의 핵심은 결국 교회 지도자다. 지도자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교회는 세워질 수 없다. 교회의 사활은 어떤 지도자를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교회 내의 지도자인 장로와 집사들이 바로 세워지고 있는가? 그들이 그 직분의 의미를 얼마나 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직분을 명예나 권세로 생각하거나, 하나의 호칭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가? 직분자를 세울 때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과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의 구조는 너무나 해묵은 숙제다. 직분의 직임이 무엇인지를 성경과 종교개혁을 통해서 회복된 교회 직제를 통해서 바르게 가르쳐야 하고 그릇된 관행과 제도는 과감히 고쳐야 한다. 건강한 정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목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지금 교회의 문제의 핵심에 바로 목사가 있다. 초대교회에는 목사가 된다는 것은 목숨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 경건한 두려움을 별로 갖지 않는다. 목사의 직임과 책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중대형교회 목사들의 깊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바른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기에 신학교를 세웠지만 신학교가 오히려 질낮는 목회자를 양산함으로 문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 무자격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무자격 목회자가 양산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명분은 목회자 양성이지만 실제 목적은 학교 유지와 학위장사로 학교를 키우는 것이 되어 버린 신학교가 실제로 많다. 좋은 목회자를 바로 양성하지 못하면 오늘날교회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신학교 정비와 목회자 수의 축소와 목회자 후보생의 철저한 교육과 양육에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힘써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쉽지 않다. 신학교 문제 뒤에는 악질적인 교단분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원죄와 같은 교단분열이 해결되지 않으면 신학교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신학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좋은 목회자 양산이 막힘으로 교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 고리에 걸려 있다. 교회와 교단이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지 않으면, 결국 세상과 시장이 이 문제에 손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고쳐가고, 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힘쓰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한국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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