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33
2018/03/08 14: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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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웅장한 성당과 오늘의 거대한 교회 건물 무슨 차이 있나
3부 이제는 교회개혁과 신앙개혁이다

33. 예수님이 대형교회를 좋아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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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 100대 교회의 50%는 한국에 있다고 한다. 기뻐할 일인지 슬퍼할 일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교회는 매우 특이한 형태로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는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가 많다.
성경 중심의 교회론에 비추어 볼 때 과연 대형교회는 성서적인가?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한국에 계신다면, 대형교회를 어떻게 보실까?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행 2:46, 47)는 것이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다. 지금의 대형교회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다.
물론 초기 교회와 현대 교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과 기능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단순히 성도들이 모여서 목사의 설교를 듣고 헤어지는 장소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교회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용서하는 연습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교회가 대형화 될수록 교회 본래의 기능은 약화된다. 이러한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대형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1. 건실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되고 있다(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그리고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몸으로 비유된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라면, 성도들은 몸의 각 지체에 해당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그래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머리의 지시를 따라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와 일체감을 갖고 상호 작용을 하면서 몸을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형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거의 손님처럼 왔다가 교회를 떠난다.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 큰 교회를 이끌고 운영해 나간다. 가정으로 말하자면 자녀들이 너무 많아 부모가 돌 볼 겨를이 없어 아이들이 방치된 상태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
2. 죄악을 징계하고 치리하기가 쉽지 않다. -교회의 다양한 기능 중의 하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악습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교회도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온갖 죄악들이 그칠 사이 없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사회에서는 주변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죄인이 있으면 재판을 하고 감옥에 넣어 사회와 격리시킨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교회가 용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죄인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물론 징계와 치리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적용하여 징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경에는 최종적으로 교회의 권고를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고 되어 있으나, 교인수가 많을수록 치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형교회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3. 개인 우상화로 발전될 가능성이 많다. -교인수가 많을수록 당회장은 교인들과의 개별적인 접촉이 어려워지고 목사의 권한은 더욱 비대해진다. 목사도 죄인의 속성을 가진 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되면 교만해지고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거대한 교회당 중심에서 설교를 유창하게 잘 하는 목사를 멀리서 바라보는 교인들에게 목사는 다소간 신비스러운 존재로 느껴진다. 목사도 어떤 면에서 자신이 그러한 존재로 보여지기를 원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마치 목사가 주인처럼 행세하고 예수의 섬기는 정신을 망각한 채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그야말로 교인들의 우상처럼 존재하며 권세를 부리게 된다.
4. 교회가 상업화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 -교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교회가 대형화되면 소위 말하는 상거래의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러한 구조를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도 늘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 성전에서도 그러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상인들과 제사장들이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서로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이다. 혹자는, 교회 세습도 이 먹이사슬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대형교회를 지도하는 청렴하고 경건한 목사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 그들의 인품과 신앙과 능력이 교회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한 것이다. 지금도 주님이 이 땅에 계신다면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고 하시지 않았을까?
5. 재정문제로 인한 불화의 소지가 상존한다. -일반적으로 대형교회의 특징은 사람이 많고 돈이 많다는 것이다. 돈과 사람이 얽히면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 그 많은 헌금을 지출하는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으며, 무슨 용도로 그 재정을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늘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회의체가 있고 절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불화와 분쟁과 비리의 소지는 상존한다. 대형교회가 헌금의 상당부분을 주변의 불행하고 불쌍한 이웃들이나 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사용했다면, 아마도 교회의 이미지는 현재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대형교회는 그 규모와 현상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초대형 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엄청난 재정을 사용하고 있다. 때로는 그 재정의 크기와 용도가 불의하게 처리되어 발생하는 문제도 비일비재하다. 교회와 목회자 모두에게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급기야는 교회의 그 재산권과 함께 교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도 하게 된다.
6. 목자와 양의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 -성경은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를 목자의 양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다. 성경 시대의 목자는 양과 생명을 나누는 밀접한 관계이다. 양의 수가 많아도 목자는 양을 개별적으로 알고 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요 10:2) 낸다. 참 목자는 “양을 알고” 양도 목자를 안다(요 10:14). 이것이 목자와 양의 관계인데, 대형교회가 되면 과연 목사와 교인들의 관계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요 10:11)릴 각오가 되어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목사가 늘 염두에 두고 스스로를 살펴야 할 주제가 있다면, ‘혹시 내가 내 양을 잘 모르는 삯군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7. 교회에 불충실한 교인들이 양산(量産)된다.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직임과 직분을 가지고 충실하게 일을 하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주님께서 명하신 선교적 사명이 있다. 그리고 교회의 기능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엡 4:12)는 것이다. 대형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들 각자가 이러한 선교적 사명과 직분을 가지고 충실하게 봉사하며 전도하는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형교회 성도들을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많으면 관리가 어려워지고 조직에 대한 개별적 충성도는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 신문(조선, 2017.11.24.)에 500년 전 루터와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를 각색한 기사가 있었다. 루터가 교황에게 말했다. “교회는 로마 성 베드로 성전을 짓느라 교회의 분열이라는 값을 너무나 비싸게 치렀습니다.” 교황이 대답한다. “저도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태도는 거대한 건축이 아닌 이웃을 향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가톨릭교회의 거대한 성당 건물과 오늘날 개신교회의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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