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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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전여행을 떠난 대학생이 어느 산골을 지나다가 밤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인가가 드문 곳이라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너무나 반가워서 단숨에 달려갔다. 그런데 방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모자간의 걱정스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먹을 게 없는데 당장 어쩌나” “어머니 할 수 없잖아요. 똥이라도 드셔야지요. 먹을게 없다고 굶으실 수는 없잖아요?” “정말 그렇구나. 할 수 없이 똥이라도 먹어야겠구나.” 아니 도대체 얼마나 가난했기에 그것을 먹는단 말인가? 문 밖에서 이 소리를 듣고만 있던 이 학생은 너무나 모자가 불쌍해서 도저히 그냥 지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을 부르고 문을 열어 보았다. 뭐 했겠는가? 화투판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완전하지를 못해서 이렇게 오해를 할 때가 많이 있다. 사람이 가장 답답할 때가 언제인가? 자신이 오해를 받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으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누구냐? 하는 질문은 유사 이래로 계속되어온 질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명쾌하게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스의 철학자 풀라톤 조차도 ‘무엇이 하나님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이 아닌지는 안다’. 지극히 피상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확실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이 누구신지 분명히 성경 속에서 분명히 밝히셨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묻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답하시는 장면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알파와 오메가로 전에도 계시고  지금도 계시고 장래에도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철학적 산물도 아니고 도덕적 대리자도 아니고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그 종교의 기원을 보면 대개 인간의 두려움을 내어쫓기 위해서 즉 액운을 없애 보려고 어떤 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무속 신앙이고 또는 인간의 마음을 바르게 해서 인간사회에서 질서를 잡아 보려는 데서 생긴 수양 종교가 있는데 그런 것은 인위적 종교 즉 사람이 만든 종교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계시종교로 이는 영원한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알려주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오셔서 지금도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1. 본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셨다. 이 이름의 의미는 영원한 자존 자 즉 스스로계신 분이라는 말이다. 오늘성경에 보면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모세를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바로의 수중에서 해방 시켜내라고 명령을 내리신다.
이때 모세가 말하기를 그러면 바로가 내게 묻기를 네가 누구의 부르심을 받고 왔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말하리이까? 고 질문을 한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 하시며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고 말씀 하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피존적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존자이심으로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못하실 것이 없으신 전능자이시라는 의미이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이 말씀은 이해하기 좀 힘든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밝히신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자존하시는 하나님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르지 자존하심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그 분께 경배 드려야 할 것이다.
3장에서만 너희 조상의 하나님임을 네 번이나 강조 하셨는데 그 이유는 언약의 하나님 이심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출 2:24)을 기억 하셨다는 것은 곧 언약을 파기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이다. 민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언약은 영원히 불변 하시다는 뜻으로 소금언약 (민 18:19)으로 맹세의 언약이 되는 것이다.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을 때에 우리는 큰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언약 하신 것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와 맺은 언약도 성취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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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호와인가? (출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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