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매일 새벽기도, 건강이 허락되는 대로 연합단체 모임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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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장로(92세, 예장합동 서울 내수동교회)는 매일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매주 사랑의 쌀 조찬기도회, 원로장로회 모임에 참석하면서 경기노회와 서울지구 장로회 월례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매주 목요일 내수동교회 노인대학에도 열심히 출석하고 있다.
“저는 하루도 집에서 조용히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 나이에 분주하게 살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김 장로는 어린나이에 결혼하여 딸 하나와 부모님을 모시고 황해도 옹진군에서 1.4후퇴 때에 피난 나와 월남하였다. “제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친족이 이산가족이 되지 않고 살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처가 쪽으로는 처남과 처제가 이북에 남아있는데 소식은 못 듣고 있어요.”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통일을 기다리고 있지만 너무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젠 노년에 기다릴 희망도 다 사라졌다고 탄식한다.
김 장로는 생애에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가 박희천 목사라고 말한다. 박 목사와 교회를 섬기면서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감사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 당시 후암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박희천 목사를 따라 지금의 내수동교회를 개척 설립한 후 은퇴하기까지 함께 사역해 왔다고 한다.
김 장로는 1973년에 장로장립을 받고 노회와 총회 총대로도 활동하고, 경기노회 장로회와 서울지구 장로회, 전국 장로회 등에 참석하면서 연합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친교와 인간관계를 넓게 가져왔다.
김 장로는 박희천 목사의 오른팔이 되어 여전도사를 두지 않기로 한 교회방침에 따라 20여 년간 ‘내수동교회 심방장로’로 사역하였다. “아마도 한국교회에 심방장로로 이렇게 오래 사역한 것도 처음 같고, 제가 여전도사 대리역할을 한 것이지요.”라면서, “저는 심방을 가면 꼭 담임목사님이 보내서 왔다고 말하면 잘 받아 줍니다.”
내수동교회를 은퇴한 박 목사는 그 공로를 잊지 않고 늘 “모든 것은 장로님이 다 하셨다.”고 했다고 한다.
김 장로는 부인 한도화 권사(91세)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고, 두 자녀는 칠십대가 된 노년을 맞고 있으나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다. 아들의 집에서 보내고 있는 노부부의 건강은 아직도 출입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함께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다. 그러나 때때로 북에 두고 온 고향을 생각하면서 눈물 젖은 기도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북에서 피난 나와서 남다른 은총으로 예수 믿고 살게 됐으니 감사하고, 남은 생애도 예수님 의지하고 천국 갈 때까지 감사함으로 살겠습니다.”
김 장로는 그동안 연합단체 모임에 참석하며 느낀 지도자들에 대한 소감은 “무엇보다 자리다툼이 너무 심하고, 자신들이 회장과 임원을 맡겠다는 욕심이 많다.”면서 기독교의 가치관인 ‘겸손’이 결여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나는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면서 순교적인 사명을 일깨워 나가야 희망이 있다고 했다.
김 장로는 피난 나와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고 살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추억은 본 교회에서 박 목사의 은퇴를 앞두고 예우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이 가슴 아프다고 회고한다. 같은 당회원으로서 의견대립이 되었을 때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도 서로가 화해하고 손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
김 장로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이고, 성경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16절로 18절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구절을 평생 교훈으로 삼고 자녀를 양육하고 대인관계를 가져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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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 김봉선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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