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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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을 보수란 착각 속의 인물이 아니기에, 우리는 칼빈주의에서 개혁주의의 5대 표제로 생명의 가치를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어느 분이 ‘칼빈의 제네바 학살은 역사적 무지로 인한 오해’란 논문에서, 칼빈 이후 유명한 정치 철학자 두 명이 있었습니다. ‘홉스’와 ‘밀턴’이라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홉스는 군주 혹은 국가의 통치를 지지했고, 밀턴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는데 이 둘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칼빈의 사상을 근거로 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한쪽에 치우치지 안 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5대 교리에서도 인간의 전적부패, 무조건 선택, 제한적 구속, 불가항력적 은혜, 궁극적 은혜가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뜻하심을 말한 것입니다.
그가 기독교 강요에서 성경 줄기의 핵심을 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순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칼빈의 사상을 일부분에 매달려 있기에 개혁주의생명신학 운동이 필요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신학을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신학으로 돌아오게 하자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아는 것을 전하는 것인가? 안다는 것의 출처가 어디인가? 아는 것을 전하면 목사가 아닙니다.
목회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목회할 수 있는가? 내가 목회하기 위하여 학문을 알아야 하는가? 이런 사람이 목회자가 될 수 있는가?
학문의 무용성이 아니라 학문의 목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학문이 학문으로가 아니라 학문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심오한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큰 틀에서 구약의 율법이 결국 몽학선생으로써의 역할에 중요성을 말했듯이 바울의 학문이 학문으로서의 정죄에서 은혜로서의 유연성을 말했듯이 우리가 사람들이 주장하고 말하고, 글로 써 놓은 역사 속에 순간순간 이어온 사람들의 논리가 합해져 결국 ‘성경이 답이다’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5절에서 보시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린도후서 4장 3절에서는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는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을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 9절에서 “누구든지 너희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10절에는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12절에는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절 이하에서 자기 자신이 조상의 유전대로 유대교를 지나치도록 밀어 학문적 가문에서 자란 자신의 확실한 학문성을 말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전통과 습관과 많은 관계성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정하신 소명의 확실성의 특징은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명은 논리가 아닙니다. 사명을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이 아닙니다. 개혁주의 생명신학 실천은 연구하고 의논해서가 아닙니다.
바른 신앙이 곧 바른 교회입니다. 바른 교회는 바른 목회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전문한다는 목회자는 위선입니다.
예수님은 매우 간단한 답으로 제자들의 간절한 소망인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의미를 알기 위하여 요한복음 7장 15절부터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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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쉬운 것이다·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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