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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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의 지혜서라는 ‘미드라시’(Midrash)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보석 세공사들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닐만한 반지를 하나 만들고 그 반지에 글귀를 새겨 넣으라. 내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위대한 일을 이루었을 때, 그 글귀를 보고 우쭐해 하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견디기 힘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는 글 귀어야 한다.” 세공사는 최선을 다해 최고의 반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고민을 하다가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솔로몬이 말했다. “이렇게 써 넣으세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세공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솔로몬이 다시 말했다. “승리의 순간에 이 글귀를 보면 자만심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만약 절망에 빠졌다면, 이내 표정이 밝아지고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에게 항상 원점에 서라는 말이다. 즉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호랑이, 사자, 늑대는 모두 초원의 왕으로 불린다. 이 중 누가 가장 총명할까? 동물학자들은 간단하게 답한다. “호랑이는 힘으로 이긴다. 호랑이는 사냥감을 잡을 때 빠른 속도와 체구를 이용해 사냥감을 입으로 문 뒤 죽을 때 까지 놓지 않는다. 사자는 지혜로 승부를 건다. 사자는 자신을 숨길 줄 안다. 숲이나 작은 언덕 뒤에 숨어 있다 사냥감이 가까이 다가오면 번개처럼 달려들어 몇 초 안에 승부를 낸다.” 맹수들 중 늑대 또한 원점 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늑대는 사자나 호랑이처럼 몸집이 크지 않고 표범이나 치타처럼 빠르지 않다. 그래서 무리를 이루고 팀워크를 통해 생존을 도모 한다. 특히 무리를 이뤄 꽤 먼 거리까지 추격하는 방법으로 사냥감을 제풀에 지치게 해 사냥한다. 사냥감이 눈앞에서 재빠르게 사라져도 탁월한 후각을 동원해 끝까지 쫓아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람이 냄새를 흩어놓으면 엉뚱한 곳으로 빠져버린다. 늑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추격에 나선다. 추격 도중 더 미궁 속으로 빠질 때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차근차근, 치밀하게 쫓아간다. 끈질긴 추격에 대부분의 초식동물은 제풀에 지쳐 쓰러진다고 한다.
우리들도 늑대와 같은 삶을 살아가며, 인생의 목표를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 1977년 서울 우아동에서 도봉산으로 오르는 등산길, 산길을 걷던 40대 후반의 남자가 갑자기 허공을 향해 “나는 나쁜놈입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평일이라 등산객이 없었지만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나는, 나쁜 놈”이라고 소리친 그는 지금 중견그룹인 성호그룹의 수장으로 있다. 창업주인 송재성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 무슨 사연일까? 언제나 대접 받는 공무원이라는 ‘갑’ 위치에서 안주하던 자신과 결별하기 위해서였다. 철저하게 ‘을’의 자세를 마음에 새기기 위해 업자에게 큰소리쳤던 과거를 떠올리며 ‘나쁜 놈’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퇴직 후 사업을 해보고 싶었지만 돈도, 면허도 없어 일단 대학 선배의 건설회사에 들어가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남들이 쓸 때 같이 쓰고, 남들이 잘 때 같이 자고, 남들이 놀 때 놀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힘들지 않는 삶은 없다. 그래서 삶을 의미하는 글자는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약한 식물의 잎이 얼어붙고 딱딱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만큼 힘들다는 의미다. 또 소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에서 왔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육중한 소가 가느다란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위험하고 힘든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아는 게 있다고 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3년간 모은 돈으로 작은 건설 회사를 인수해 오늘에 이르렀고,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20여 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상전 의식’을 고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냥 잘해서도 안 되고 남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치열한 사업 일선에서 정말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가 이처럼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자신이 서 있어야 하는 위치 즉 원점을 파악한 덕분 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약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주 극소수만이 자각한다. 어떤 사람이 한번은 부종으로 고생하는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느냐고 묻자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라고 말했다. 그 자신 또한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러기에 우리도 울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생각,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은 물론 그동안 맺었던 사회적인 관계도 모두 분해에서 다시 재조립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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