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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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는 어떤 것이며,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나름대로의 머리 속에 담아 둔 이미지가 있다. 물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절을 짜맞추어 생각해낸 것도 있지만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 꾼들의 만담을 듣다 보니 천국과 지옥에 대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굳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참다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좀 더 분명한 그림과 신앙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속해 있는 나라, 곧 자기가 태어난 나라, 자기를 길러주고, 자기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해주고, 언젠가  자기가 묻혀야 할 자기 조국을 모른다면 그는 그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는 거주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려 간다고 너희에게 말하였을 것이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할 것이다.” (요한 14: 2-3)
예수님의 이 말씀을 되새겨 보면 예수께서 세상을 떠날 날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제자들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신다. 그곳은 아버지 집 안에 있는 곳이다. 그곳은 앞으로 제자들이 거주할 곳이다. 이곳은 분명 우리들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서울시 몇 번지가 아니고,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 미지의 세계 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곳, 그래서 하나님이 왕이신 그곳에 제자들이 있을 곳을 예수께서 마련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 세상과는 별개의 세상이 존재함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우리는 그곳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떤 모양인지, 그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한 계시적인 기록이 없다. 우리가 본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 뿐이다. 그는 분명 우리와 똑 같이 숨을 쉬고, 먹을 것을 잡수신다. 그러나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이고 이동하시며, 우리의 시야에서 자유롭게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신다. 전혀 다른 기능을 한 사람의 모습니다. 아마도 우리도 그러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령한 사람들이 신령한 몸을 입고, 신령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우리와 함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이 세상 만물의 통치자이시다. 모든  만물의 왕이신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맺고 이 만물의 통치권을 아담에게 넘겨 주셨다. 자신은 대왕이 되시고, 아담은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반란으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멸의 대상이 되 버렸다.
그러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아담과 그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죄와 죽음의 심판을 내리신 그 언약적 연대성의 원리를 똑같이 적용하여 새 아담을 세우고, 새 아담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살리시려는 계획을 세우신다. 그리하여 첫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위로는 하나님, 그리고 그의 대리통치자인 새 아담과 그와 언약적 연대성을 맺은 새로운 피조물들, 곧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려는 것이다. 물론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그의 백성들의 마음 판에 새겨 두어, 다시는 말씀을 버릴 수도, 변개할 수도 없이 말씀과 함께 죽고 말씀과 함께 사는 새 사람들이 될 것이며, 이때는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지식이 넘치는 세상(사 11:9),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이웃에게 여호와를 알라고 전도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렘 31:34).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담을 대신한 새 아담의 위치이다. 아담과 새 아담은 다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대리 통치자로 세운 왕들이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셨다. 반면 새 아담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동정녀의  몸에서 낳게 하셨다. 그래서 새 아담, 예수님도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아담과 비교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문제는 예수님도 아담처럼 하나님의 형상이며, 통치자이고, 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담보다 모든 면에서 수월한 통치자이시다. 그의 출생 이전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땅에 오셔서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왕으로서의 위치에 있어서 그는 아담과 비교 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와 영광을 갖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왕의 왕이 되시고 그의 통치는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으면 언제 시작된 것인가? 예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자기의 왕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곳에 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신 그 순간 죄로 말미암은 죽음의 권세는 더 이상 우리를 그의 권세 아래 가두어 둘 수가 없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속죄적 죽음이 아담과 그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만물의 죄 값을 충분히 치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와 죽음이 더 이상 아담과 그 연대성 안에 있는 자들을 붙들어 메고 있을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든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며, 새 아담이 되신 것이다. 새 아담이 되었다는 말은 예수께서 새로운 나라의 왕이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의미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왕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이다. 아담과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던 자들은 이제 새 아담이 새 나라의 통치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에게 나아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고백을 함으로 새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묶이게 되는 언약적 연대성의 원리가, 새 아담의 의로운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적용된 것이다 (롬 5:14).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창조된 세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바로 예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께서 왕노릇하시는 나라이다. 그 나라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순간에 시작된 것이며, 예수님의 왕권은 바로 부활의 순간에 선포되고 그의 통치는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자기 백성을 모으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눅 13:33). 세상 나라 사람들, 아담과 언약적 연대성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제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몰려오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새 나라의 백성의 인침을 받는 것이다 (사 2:1-4; 11:9; 요 12:20-26).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이 새 하늘이고 새 땅이다.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 있고, 우리 가정에 있고, 우리 교회에 있고, 우리가 서 있는 그곳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거처로 갈 것이다. 우리들의 이 육신의 몸이 변화되어 신령한 몸이 되고(고전 15:4),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일 수 있는 참다운 자유의 몸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의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이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삶을 마치고 가야 할 그곳, 곧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그 거처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지 못한 사람이 저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서 거하기가 불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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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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