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46. 기독교신앙이 무너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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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신앙의 근본은 성경이다. 그래서 기독교신앙은 성경 말씀에 충실할 수록 든든해지고 성경에서 멀어질 수록 약해진다. 오늘날 기독교신앙이 현저하게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나 성도의 삶이 성경의 말씀 중심에서 이탈해 가고 있거나 말씀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다양한 원인들 가운데 우선 일곱 가지 이유를 선별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1. 감성신앙을 선호하는 그리스도인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을 지을 때에 땅을 파고 기초를 놓는 것과 같다. 기초 없이 지어진 집은 곧 무너진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요 17:3)라고 하였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 구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통성기도나 어떤 열광적인 집회에서 마음에 뜨거움을 느끼면 그것이 구원을 받은 표시인 줄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신앙에도 감성적인 요소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에도 지(知) 정(情) 의(意)단계가 필요하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知)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그 말씀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감동(情)이 필요하다. 그 다음 단계는 믿음을 가지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意)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신앙이 든든하게 성장하게 된다.

2. 성령에 대한 오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의 능력을 더하시기 위함이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리고 성령께서 하시는 또 다른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고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이와 같은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그리스도인 삶에 맺히는 열매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 23)이다.  

3.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습관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의 핵심적인 차이점은 제물이었다. 가인의 드린 제물 농산물은 ‘인간의 공로’를 상징하는 것이고 아벨이 드린 피 흘리는 양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것이다. 인간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지 않고는 결단코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음을 알려주는 값진 교훈이다. 더 나아가서 가인처럼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 외형적으로나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섬기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자신의 형편이나 사정에 맞춰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의 기준을 정하여, 원래의 말씀과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목회자들은 모든 성도들의 신앙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가르치고 깨우쳐 올바른 길도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4. 표적과 현상을 추구하는 신앙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이적(異蹟) 혹은 기적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기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의 신앙을 유지시켜 주는 도구가 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적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적의 양식 만나를 40년 동안 매일 먹었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이적을 보면서 살았지만 그들은 쉽게 배도하였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사탄도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그러므로, 목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쳤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어떤 기적이나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근거로 해서 자신의 믿음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5. 온전한 헌신의 부족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이 말씀들의 의미가 무엇인가? 죄된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려면 전심전력을 다 해도 늘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부업이 아니라 본업이다. 그야말로 올인(all in)해야 한다. 한 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습관적으로 예배드리고 사람들과 친교를 나눈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일반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살다가 다시 또 교회에 나와서 동일한 일을 반복하고 산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변화되는 삶을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올바른 신앙심으로 하나님께 충성된 삶을 살기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포기하고 순교한 사람들, 참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토굴에서 광야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오직 하늘을 바라고 살았던 사람들의 신앙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왜 온전한 신앙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가? 주님을 위하여 온전히 희생하며 헌신하는 신앙의 회복되어야 교회가 살아날 것이다.

6. 가라지 신앙의 보편화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려고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자신의 신앙이 자라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의 신앙생활에도 장애가 되고 시험거리가 되는, 영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가라지’ 혹은 ‘쭉정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인간의 죄된 성향 때문에 교회 안에는 언제나 알곡보다 가라지가 다수를 이룬다. 그래서 목회자는 그 다수를 아우르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라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편안하고 안일한 설교를 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그래서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서 설교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다 보면 교회의 전반적인 영적 수준은 점점 떨어지고 ‘가라지’를 기준으로 하는 신앙의 분위기가 보편화되어 간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한국교회의 기독교신앙을 무너뜨리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7. ‘말씀’에 대한 무지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신앙과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경을 심도 있게 열렬히 연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목회자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질문을 가져오는 ‘성가신 교인’들에 대하여 부담을 갖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교회는 성경 말씀에 대한 무지가 편만하다. 구원과 영생의 원리나 도리도 모르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기준도 점점 모호해진다. 소위 기성교회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들이 오히려 성경을 더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조직적으로 한다. 성경을 깊이 알고 싶어하는 많은 지성적인 교인들이 그런 교회들을 찾아 떠난다. 그곳에 가서 잘못된 교리들을 조직적으로 배우면서 이단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요즘 한국 기독교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말세에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호 4:6)한다고 하신 말씀이 이렇게 성취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다시 힘을 얻어 부흥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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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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