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쉬운 것이다·70
2018/08/30 16:1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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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가 생명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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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분명히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곳만이 강림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알아듣지도 못할 말과 글로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요란하게 하여 계속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나와 함께 계심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하는 일을 제사장이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매우 단순한 복음의 가치를 복잡하게 만든 화려하고 찬란하게 보이는 인간적 욕망의 꿈에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유교적인 전통과 무속적 신비주의로 자리가 굳어진 곳에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물론 대단한 선교적 열정이 있었던 초기의 선교적 역사는 급진적으로 발전할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 보면 기독교가 무섭게 변질되어 명목상의 기독교일 뿐 복음과는 관계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유교의 기초를 버리지 않은 그 위에 구약적 제사장이라는 의식이 굳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요, 만인제사장으로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 속에 유교적 질서와 윗사람 위주의 중심이 귄위주의, 사회질서가 기독교 안에 들어와 하나님이란 이름을 남용하여 심판하고 형벌만 주는 가까이할 수 없는 분으로 제사장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당회장권, 목사의 권이 남용되어 설교나 신학적 바탕을 유교식으로 해석하는 습관이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된 것입니다.
남성 중심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한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습성으로 남자는 치유될 수 없게 되었듯,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요, 동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둘을 따로 봄으로 성경의 근본적인 기초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런 것은 절대로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들은 가문을 지나치게 유지하려는 정통주의에서 발생한 신학도 학문으로 단순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게 복잡하게 만들어 엄청난 범죄를 일삼고 있으면서 듣기 좋은 말과 용어를 사용하는 가증스러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세계 기독교 중 가장 부흥했다고 자랑만 일삼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상처가 곪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없게 위장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받아들여 수입한 신학을 학문이란 겉옷을 겹겹이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선진들의 눈물과 피로 닦아 놓은 터 위에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흐름은 자료에 의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드(18세기 대각성운동의 주역)는 “부흥은 전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며 인간은 부흥을 가져오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찰스 피니는 “부흥이 인간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준비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찰스 피니의 사상에 매여지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영감주의자인 노오만 빈센트 필은 ‘부흥에 있어서의 인간적 역할’을 강조한 저서인 「확신의 삶」, 「적극적 사고력」의 정신적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서 스스로 하는 신앙, 꿈과 환상의 필요성 강조, 심리학적 정신치료법 강조되었습니다.
그 후 필의 수제자 로버트 슐러의 대중적 부흥운동, 교회성장 원리, 적극적 사고, 환상, 상상, 심리적, 상업적 기술에 근거하여 ‘적극적 사고에서 위대한 힘이 생긴다’는 주장이 한국교회를 흔들어 기형적인 성장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한국교회의 현장을 옥성옥 씨가 「마케팅에 약해진 기독교」, 「심리학에 약해진 기독교」라는 책에서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목사들로부터가 인간의 본질상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필요를 교회가 채워줌으로 인간관계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자신이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방 종교와 똑같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으로 재판도 필요없이 즉결사항에 속한 죄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모든 행동은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에서 만들어진 위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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