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인간화다
2018/09/13 17:3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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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폭우가 쏟아지고 인명 피해가 난다. 자연적 재앙과 재해는 분명 인간에 의한 인재이다. 인간의 변명은 참 쉽다. 종교적 언어가 주어지고 그것들로 용서와 사랑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합리화와 정당화가 가능하다.
본래의 자연과 역사의 후천적 자연의 재난과 재앙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삶을 우겨 싼다. 그것은 누구의 탓이 아니다. 우리들 모두의 욕망의 결과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구와 우주를 탐구하고 탐색한다. 그리고 파헤치고 분석하고 개발하고 계발한다. 인간들의 이러한 욕구들은 브레이크가 없다. 우리는 멈출지를 모른다. 멈출 수도 없다. 우리가 만들어 온 문명을 원망하거나 불평할 수도 없다. 그런 것들이 다 부질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족과 행복을 기다린다. 그 행복과 만족이란 풍요와 넘치는 소유를 원한다. 그것이 물질이든 권력이든 혹은 종교적 이든 영적이든 많은 것이 소유가 되어야 불안을 떨칠 수가 있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고 몸부림치며 거짓을 일삼고 서로가 물고 뜯는다. 인간들의 역사는 이러한 소유와 잔인한 정복을 위하여 서로가 죽이고 죽이는 싸움과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전쟁을 통하여 부를 축적해 가는 강대국들의 무기 산업은 인간과 자연의 존재들을 파멸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성서는 모든 것들을 창조한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되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하였다고 한다. 창세기 1장은 남녀를 창조했다 하고 창세기 2장은 남자를 만든 후에 깊은 잠에 들게 하고 그 갈비뼈 하나를 빼내어 돕는 배필인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남자의 살 중의 살이고 뼈 중의 뼈이다. 다시 말하면 남녀는 똑같은 하나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소위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폭력적 역사로 점철된 것으로써 그동안 성적인 차별로 인하여 억압과 착취를 당해 온 여성들은 창세기 1장의 평등적 창조를 주장하며 남성의 권력과 폭력으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이러한 양성평등은 단순히 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화의 문제이다.
역사 이래로 여성들의 남성들에 의한 억압과 착취의 역사는 이제는 중지 되어져야할 일이다. 우리들의 미래를 무엇이라 확언할 수 없다. 파괴된 자연과 땅과 바다가 정상적인 회복으로 복구될지 아무도 모른다. 성적차별과 함께 존재해 온 악은 하나가 인종의 차별과 폭력이다. 이제는 권력과 하나가 된 자본의 폭력이 수많은 대다수의 민중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아무리 선한 삶을 열심히 살려고 해도 구조 악이 도사리고 있어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든지 주류사회를 꿈 꿀 수가 없다.
우리는 너무도 긴 세월 막혀버린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고 헤어진 가족과 동족들이 서로가 얼싸 안고 하나가 되는 진정한 통일을 소원하고 있다. 자본 양극화의 골이 매여지고 성과 인종, 문화와 종교적 차별이 없는 상호 존중의 인간화가 이루어지길 기도하는 것이다. 억울하고 슬픈 상처의 눈물이 닦아지는 하나가 도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이간들은 권력과 돈에 미쳐서 진정한 하나 됨의 관계를 이루지 못한다. 입을 열면 거짓이고 중상이며 살인적 비난을 멈추지 못한다. 좌우의 이념적 틀을 깨지도 못하고 작은 배려와 관용도 없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울타리에 갇히기를 바라고 짜 놓은 틀 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사도 바울의 율법과 복음의 자유를 아직도 분간하지 못한다. 통일은 인간화를 이루는 것이다. 인간이 짐승처럼 배만 불리고 온 갓 쾌락을 위하여 거짓 된 폭력을 일삼는 다면 그런 것은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사실은 짐승처럼이라는 말이 옳지 않다. 짐승들은 자신들이 창조 된 창조의 섭리를 따라 산다. 오직 인간만이 창조의 질서를 깨고 짐승만도 못한 삶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는 인간화이다. 통일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제도와 평등과 자유의 질서가 이루어질 통일인 것이다. 양극화의 골이 더 깊어지고 성과 인종차별이 심화되며 악이 있는 채로의 그림은 그리지 말아야 한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생명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는 낡은 이념의 사움과 논쟁은 벗어야 한다. 냉전의 산물인 분단을 다시 정치 경제적 이념으로 몰고 가는 치졸함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가장 좋은 역사는 갈등과 분쟁, 전쟁이 없는 모두가 평등과 자유로 살아가는 것을 평화의 역사이다. 그것은 단순한 전쟁이 없는 평화가 아니라 성과 인종, 분화와 종교, 온갖 부조리한 사회적 모순이 없는 함께 더불어 사는 진실 된 사회이다.
생명을 생명답게 인간을 인간답게 상화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통일의 길, 바로 인간화가 성취되는 길이다. 9월에 열리는 주류교단들의 총회가 교권과 독단적 주장의 싸움터가 아니라 십자가에 피 흘리며 자본과 권력 이간들의 이기적 편견으로 처형된 그 죽음의 의미가 우리의 가슴 심연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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