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쉬운 것이다·76
2018/11/08 10:31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목사가 제사장이 아닐 때 변화되어야 할 일들 2
1.jpg
바른 신학운동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신학이란 상아탑학문이나 응용학문이 될 수 없습니다. 신학의 대상이 하나님일 뿐 학문으로 논설이나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체험적 신앙이요, 실천적 복음 그 자체입니다. 머리에 맴도는 학문이 아닌 가슴에서 생명이 솟아나는 실천이요, 체험 그 자체입니다.“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신령과 진정이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종교적 대상인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고 하버드대학의 모토로 삼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입니다.
그러기에 바른 신학운동이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학문적인 연구로 삼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사렛에서의 인간 예수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탄생 때 하늘의 천사가 말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신약성경에만 1,390번이나 나타난 예수에 대한 사건 속에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마 1:18).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느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써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행 4:1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 3:23).
바른 신학 자체가 오직 그리스도인 것은 예수님의 상황 설명이나 배경 설명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에 대한 감추어진 삶 속의 비밀로 인한 생명적 삶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알리려는 의욕이나 열심히 아니라 그리고 교재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 속에 생명으로 역사 하시는 그분이 내 속에 계심에서 오는 나 자신의 이야기와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신학 자체가 오직 그리스도에게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영적 생명운동은 오직 믿음입니다.
영성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는 즉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개혁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주장은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믿고 성경이 말씀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모든 육체적인 것들과 악한 것들이 개혁되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나타나는 결과가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대상을 우상으로 만드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예수를 자기 성공의 도구로 사용함은 분명히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믿음의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는 분명한 영적 변화인 것입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