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가꾸는 삶
2018/11/30 13: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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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관계가 있다. 하나는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 관계이다. 수직적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등을 말 한다. 여기에 수직적 관계로 말하면 감사와 존경을 의미 한다. 수평적 관계는 친구나 동료로 여겨 이웃 간에 화목하고 갈등이 없는 관계를 알게 한다. 수직관계는 영광이라는 감사와 존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평관계는 화목으로 용서가 필요하다. 서로가 용서하는 마음으로 삶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삶에 평안을 얻어 삶이 활성화 한다.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전반적 형편을 살펴보면 내일을 위한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나와 다른 관계와 관계를 맺으며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용서하며 사는 삶의 사회를 염원하게 된다.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관용은 그 의미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수용하는 용서의 아량으로 너그럽게 이해함에 있기에 서로의 사이의 관계에서 사람에게 마음이 등장하고 시대가 바뀌는 문명의 교차점에서는 필히 ‘용서하는 마음’이 삶의 태도로 절실하게 필요함을 알게 한다. 예컨대 서로의 관계에 용서 없는 획일주의 문화는 배타의 거부와 수직적인 관계를 이루며 부정의 참신한 수용의 문화를 잃게 된다.
다양성과 자유가 통제된 사회는 다양성을 죽이고 창조성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옴으로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려면 이념의 자기주장과 생각과 견해가 동일한 사람들끼리 대화를 통하여 절대 선이나 진리의 독점을 권장해서는 아니 된다.
여기에 삶의 이치로 알아야 하는 것은 공동체의 삶에 절실하게 알게 하는 것은 삶에 수직적인 질서가 아니라 수평적인 진리를 알게 한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앞세운 십자가의 의미는 수직과 수평의 관계로 하늘의 마음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관계개선에서 그 의미를 새긴다면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관계는 수직적인 강요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필히 알게 하는 것은 민주국가와 민주사회발전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의지가 용서하며 수용하는 용서의 이해에 능력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한다. 하나님 아들이 친히 내려 오셔서 그 마음을 열어 삶으로 친히 보여 주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어 삶을 익혀가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국민이 주인 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의 중심적인 피조물의 공동체임을 알게 한다. 왜냐하면 이 공동체는 새로 거듭 난 새로운 인간의 삶의 형성을 요구하기에 삶의 정항을 이룬 그 자리가 중요함을 알게 한다. 예컨대 그리스도가 보이셨던 종 됨, 자기의 비움, 봉사와 섬김을 삶에 사랑하는 마음의 가치로 삼는 인간성의 삶의 자리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삶의 자리는 온 우주 세계가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의 자리로서 그 자리에 사는 인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지금에 와서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창조 우주세계를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보게 하는 통찰력으로 그 신앙을 갖게 한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공유하는 ‘우주공동체 의식’을 제공하는 신앙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깨닫게 하는 영성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삶’으로서 우리는 우주와 만물을 단순히 물질의 세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살펴서 함께 살아가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구원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심의 하늘의 뜻을 알게 한다. 이는 곧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를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이라 한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피조물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주전체와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지음을 받은 몫이 있는 삶의 피조물임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모두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 삶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의 삶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깨달아야 한다. 이는 곧 인간이 모두 영원한 시간 안에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한 시간 안에 잠입해 있는 시간과 역사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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