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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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가끔 특이한 용어를 통해서 마음의 표현을 나타낼 때가 있다. 오늘 필자가 들고 나온 글귀도 범상치 않는 용어 이다.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가운데 고린도를 방문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가운데 밀레도에서 제자들인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놓고 설교하는 가운데 바울의 마음이 바로 일사각오의 비장함이 담긴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예루살렘 길은 체포와 구금 그리고 심문과 형벌 같은 고난이 있을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측근들로부터 수없이 가는 길을 중단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결심하였다. 바울은 어쩜 마지막 얼굴들이 될지도 모르는 제자들을 불러 놓고 일사 각오의 비장함을 보이고 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여기에서 필자는 바울의 비장한 마음을 보고 있다.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리지만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하고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초계와 같이 버리겠다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이 얼마나 장엄한 선언인가?
바울의 이러한 각오는 제자들인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고 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28-32).”
바울은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먼저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조심하고, 그 다음은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책임지도록 맡기신 양떼를 위해 조심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교화시키는 일을 소홀이 한다면 다른 사람을 제대로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돌본다는 의미는 “먹여야 한다”와 “양떼를 목초지로 인도하여, 그것들을 먹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리들, 즉 거짓 교사들을 경계 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진 거짓교사들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노략질 할 것이며, 배교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교회의 제자들에게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경고한 것처럼 깨어 있기를 부탁하였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안주하지 않고 로마를 거쳐서 서바나까지 복음의 확산을 노렸음이 분명하다. 그는 꿈꾸고 달려가고 행동하고 열매를 맺었다. 결국 어떠한 어려움에도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필자는 오늘 바울의 신앙 결단과 제자들에게 부탁한 메시지를 통해서 한국교회의 현실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요즈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싼 것으로 여긴 다거나, 혹은 풍성한 은혜를 자신의 치부와 환락에 이용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매일 저녁 시간의 TV 시청을 할 때에 교계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부정적인 뉴스들로 인해서 자녀들 보기가 부끄럽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러한 뉴스를 생산해낸 것은 아니지만 일부 교회들로 인해서 기독교의 본질이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여기에서 주저 않자 있어야만 하는가? 아니다. 바울처럼 일사 각오의 심정으로 교회 속에 선교적 영성을 부어 넣어야 하겠다. 어쩌면 초대교회가 가진 선교적 마음으로 회귀해야 한단 말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이생의 자랑이나, 명예나, 금이나, 욕정의 발산이 아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 값이다. 주님의 피를 생각할 때마다 일사 각오의 심장을 가지고 사역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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