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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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샬롬(shalom)을 우리는 평화라고 이해한다. 2018년 한반도의 노래는 평화가 중심을 이루었다. 독일 통일의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통일보다는 선 평일을 주창하고 통일은 후음으로 말하고자 하였다. 평화가 지속된다면 통일은 따라올 것이고 동시에 통일이 온다면 평화는 지속될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샬롬은 482회나 출현하고 그것의 동사인 샬렘(shalem-완전하게하다)는 103회가 나타난다. 명사 샬롬은 237회 셀렘(shalem-화목제)87회 19회 형용사 샬렘(shalem-완전한)은 36회가 표현된다. 샬롬은 사전적 의미로는 완전, 건전, 복지, 평화 등으로 이해된다. 수학의 안전과 신체의 안전, 건전을 말하고, 행복과 번영, 육체적 건강과 평화, 평온, 만족을 나타낸다. 평화 또한 우정과 조화 또는 함께 사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나타낸다. 그것은 동시에 전쟁을 억제하고 양자 사이에 맺는 평화의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과의 간계 계약관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평화의 언약(brit shlomi)을 파기하지 않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언약을 말하는 것이다. 야웨(하나님)가 다스리는 가운데 그가 정의를 요구하며 그러한 정의의 열매가 곧 샬롬 인 것이다.
이로한 평화의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춘다.(시 85:10) 의로운 열매가 곧 평화요 그의 결실이 영원한 평안을 주는 안전을 유지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는 혼자의 독주가 아닌 조화이며 이웃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속의 조화를 살게 하는 것이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독점과 독재를 온전히 극복한 공동체를 지키는 중심의 힘인 것이다. 정치의 독재와 경제의 독점, 사상의 독단의 진정한 샬롬과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정의는 올바른 관계를 유지케 하는 것으로 사랑과 함께 약방의 감초와 같다. 감초의 성분은 모든 약제에 들어 있는 독성을 중화 시키고 각자의 약 성질이 흩어지고자 하는 것을 한 곳에 모아서 병을 치료하는 약의 효능을 온전하게 발휘하도록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약방의 감초인 것이다.
우리가 성서의 하나님을 알고 치유와 고침을 선포하고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삶을 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이 세상의 감초가 되어야 한다. 평화를 알고 평화를 만들며 평화를 행동으로 구체화 시키는 평화의 실천자들은 독재와 독점 독선의 삼독을 가장 경계하고 멀리한다. 예수는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또한 평화보다는 검을 주러 왔다고도 말씀 하신다. 전자는 소극적 의미의 평화라면 후자는 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평화를 위하여 정의의 검을 통해서 평화를 만들어 가는 의미의 평화를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불의와 거짓 된 평화를 중지시키고 너와 내가 더불어 잘 사는 진정한 평화를 위한 삶의 실천을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남북은 이런 점에서 진정한 평화가 성취된 상황이 되지 못한다. 아직도 분단의 깊은 골들과 전쟁의 흔적들이 도처에 상존해 있고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외세가 평화의 길을 방해하고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수출 6000억 달러를 자랑 하듯이 말하고 있지만 박정희 때부터 추구해온 수출주도정책은 농민과 노동자 민중들의 생명을 담보로 억압과 착취를 통해서 이루어져 온 재벌중심의 추악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러한 수출의 결과는 메울 수 없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를 이루고 다국적 자본과 외세 그리고 재벌 자본을 중심으로 여전히 민중들의 삶을 삶의 주변으로 내몰고 억압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여전히 열악한 노동의 현장에서 삶을 마쳐야 하는 노동자들과  땀의 대가도 받지 못하는 농민들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평화는 없다. 외세에 의존해서 권력을 보존하려는 매국적 정치인들에게서 평화를 찾고자 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일과 같다. 노동의 현장과 매일 매일 삶의 고달픈 민중의 허약한 삶의 터전을 외면하고서 평화는 오지 않는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전쟁은 당연히 억제 되어야 하고 보다 더 온전한 삶의 회복이 이루어 질 때 평화의 노래는 그 가치를 빛나게 될 것이다.
일제로부터 시작된 사할린의 동포들과 세계에 흩어진 민족들의 동족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오며 남북의 이산가족의 온전한 회복과 치유를 통해서 사법부와 검찰 경찰 등 이 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들에게 억압을 당한 민중들의 억울함과 한이 풀어지는 곳에서 진정한 평화의 노래는 불리어 지게 되는 것이다. 이 새 해에는 약자와 없는 자들의 쌓인 억울함이 풀어지는 모두의 평화의 노래가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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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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