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교회 첫 5대 목사가정 : 박태로 목사와 그 후손들
2019/01/17 16:1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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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명문가는 당대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교사 박태로 목사, 순교자 박경구 목사, 신학자 박창환 목사, 목회자 박호진·박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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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의 대를 이어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은 복받는 길이다. 한국교회에 신앙의 명문가가 누구일까? 사람에 따라 보는 눈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3대 이상의 목사와 장로의 가정에서 신앙의 명문가를 찾으려고 한다.

한국의 첫 5대 목사 가정
기독교가 전래된지 130여년의 역사에서 2012년 4월에 첫 5대 목사 가정이 탄생했다. 박태로-박경구-박창환-박호진-박범 목사로 이어지는 5대 목사 가정이다.
선교사, 순교자, 신학자, 목회자 등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헌신을 한 사람들이다. 이 가정의 가훈은 “성삼위 하나님만 믿고 섬기자.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하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람 앞에 기쁨을 주자”이다. 소박하고 순수한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수묵화같은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5대 신앙’도 소중하거든 ‘5대 목사’는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산물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고 순교의 제물이 되기까지 하였다.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사 1호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었다. 총회의 결의 가운데 특이한 것은 총회 조직기념으로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한 일이다.
1907년 독노회 조직기념으로 제주도에 이기풍 목사를 파송한 바 있다. 이것도 귀하고 놀라운 것이지만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제1호 선교사로 파송받은 이는 황해도 재령읍교회에 시무하는 박태로 목사였다.
이런 헌신의 뒤에는 숨은 봉사자가 있었다. 재령 지역을 담당하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의 한위렴(William Hunt 한부선 선교사의 부친) 선교사였다. 그는 박태로 목사의 사역의 멘토였고, 총회 결의에 따라 박태로 목사 등과 중국 산동성 현지 답사를 하였다.
한위렴 선교사는 박태로 목사에게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권면하였다. 당시 재령읍교회는 주일에 1천 여명이 회집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5만, 10만이 되는 수치일 것이다.
박태로 목사는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깨닫고 산동성 선교사로 떠난다. 평양신학교 제5회 졸업생인 그는 총회의 결정에 순종하여 말도 모르고 풍속도 다른 중국 선교사로 헌신한다. 박태로 목사는 ‘5대 목사 가정의 아브라함’이 된다. 그의 후손들이 신앙의 전통을 계승하여 하나님 앞에 헌신의 제물이 된다.

순교자, 2대 박경구 목사
2대 박경구 목사는 교사 출신이다. 황해도 신천 경신학교 교사와 사리원 덕성보통학교 교장을 거쳐 진남포 덕신학교 교장으로 헌신하였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또 자신이 목사로 헌신하며 그의 아들도 목사가 되기를 원하였다. 아들 박창환에게 편지하기를 “우리는 목사 집안이다. 너는 대를 이어 목사가 되어야 한다.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고 하였다.
박경구 목사는 일제강점기 말에 황해도 경이포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였다. 1945년 4월 6일. 사복형사 두명이 박 목사를 체포해 갔다. 죄목은 박 목사가 주도하여 황해도 황주군 일대의 목사들이 반국가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8.15 해방과 함께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박경구 목사는 석방되어 장연읍교회에서 시무하였다. 당시 평양신학교에 다니던 아들 창환에게 서울로 가서 신학공부를 할 것을 권유하였다.
1946년 늦가을 박창환은 어선을 타고 남하하였다. 이것이 이산가족의 시작이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교회탄압에 박차를 가했다. 가까운 이들이 남쪽으로 가기를 권하였으나 ‘내 양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거절했다고 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박경구 목사는 내무서원에게 체포되어 해주감옥에 수감되었다. 유엔군이 북진하자 감옥의 죄수들을 모두 학살하였다. 박경구 목사의 손과 발이  토막 난채 죽었다. 이 날이 1950년 10월 15일이었다고 한다.

신학자, 3대 박창환 목사
3대 박창환 목사는 1924년생으로 아직도 생존해 계신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장을 지냈고 많은 목회자들이 그의 「헬라어 교본」으로 공부하였다.
박창환 목사는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했다. 그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제국음악학교 작곡과에 입학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졸업반에는 나운영, 전봉초 등이 재학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동아전쟁 말기여서 유학생활은 몇 달 가지 못하고 귀국하여 평양신학교에 다니다가 일본 해군에 징집되었다.
징집된 지 한 달만에 해방이 되어 무사히 귀환하였다.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부친 박경구 목사도 석방되어 온 가족이 함께 모였다. 박창환은 아버지의 권유로 남하하여 조선신학교 2학년에 편입한다.
조선신학교 편입 1년만에 이른바 ‘신앙동지회’ 사건이 터졌고 신학생들은 박형룡 박사가 있는 부산 고려신학교로 옮긴다. 박형룡 박사는 고려신학교 교장 취임 9개월만에 서울로 와서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자 박창환도 서울로 왔다.
그러니 5년여 세월에 평양신학교, 조선신학교, 고려신학교, 장로회신학교를 두루 경험한 셈이다. 1948년 7월 9일 장로회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그는 박형룡 박사의 추천으로 1948년 9월 학기부터 신학교 어학 전임강사가 되어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스물넷을 갓 넘은 미혼 청년이었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한 평생 신약신학과 성경 원어 교수로 헌신한다.
그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 유학하여 Th.M. 학위를 받고, 장신대 13대 학장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 선교지의 신학교에서 강의하였다.

목회자, 4대 박호진 목사, 5대 박범 목사
신앙의 명문가는 당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를 이어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해야 한다. 2012년 4월 17일 예장 통합측 평북노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5대 목사 가정’이 탄생했다. 5대 박범 목사가 목사 장립을 받았다.
4대 박호진 목사는 “인간의 마음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목회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격려하였고, 5대 박범 목사는 “신앙의 좋은 전통을 전수해 준 가정의 영향이 컸다”고 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5대 목사 가정은 헌신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들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살고, 바로 전하는 것이 믿는 자의 본분이다”라는 지표를 안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아 목사가 되었고 그것도 5대를 계승한 것이니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세월이 더 흘러 한국교회에 6대, 7대 목사 가정들이 났으면 좋겠다. 그것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세로 말이다.
필자는 그동안 100권 이상의 책을 쓰고 번역하였다. 마지막 남은 때에 꼭 쓰고 싶은 책들이 있다. 「신앙의 명문가를 찾아서」를 통해 신앙의 아름다운 계보들을 발굴하여 태양에 비추이게 하는 것이다. 또 「한국교회의 순교자들」로서 순교자들의 자취를 찾아 세속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한국교회에 ‘순교신앙’을 확립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미담들」을 쓰고 싶다. 욕만 먹는 교회들과 욕하는 사회를 향해 “아니다. 이런 믿음도 있다”고 외치고 싶다.

※자료를 찾습니다※ 3대 이상의 목사와 장로 가정의 역사를 아시는 분들은 「교회연합신문」으로 연락바랍니다. (T.02-744-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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