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 신앙
2019/01/17 16:27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1.jpg
구주 오심의 달을 맞으며 하나님이 친히 사람으로 오시어 그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그 비유로 성육하심에 그 의미로 그 참된 삶을 요한복음서에 의해서 알게 하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속성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위일체의 제2격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에서 말한 절기를 맞게 한다.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은 예수 오심의 의미는 기다리며 맞는 교회력의 절기이며 이를 대림시기, 대강절, 강림절로도 부른다. 그 뜻은 ‘오다’(Adventus)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다. 교회력이 대림절로 시작하기 때문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뜻도 있음을 부언한다.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서 빈 구유 바닥에 눕혀 지내심을 안다. 마구간의 식구들로 상징되는 온 생물은 물론 구유로 상징되는 마구간 식구들에게 말없이 밑바닥이 되어 준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게 까지 하나님이 오시는 그 까닭이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당시 낮은 이들로 여긴 들에 목동들에게 먼저 인사를 나누듯이 세상의 낮고 천한 밑바닥 인생들 ‘땅의 백성(암 하 아레츠)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도 함을 알게 한다. 이는 맨바닥, 땅 바닥에 누워 오심의 의미를 알게 한다. 이 나눔의 완성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셔서 삶을 공유하신다.
생명은 생물로 만물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특성은 땅이 무질서하게 혼란한 상태로 되려는 경향이 있지만 생명은 정돈되고 조직화 되려는 경향이 있고 생명은 환경에서 에너지를 얻어 성장과 자기 유지에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생명은 자신의 유전 암호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여 이로운 방향으로 가려한다. 그리고 항상성이라는 안정된 정상상태를 유지하려하고 한다는 점에 유의한다. 이러한 생명의 특성을 고찰하면 인간 사회의 삶에서 삶의 구도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 이는 생명으로 오셔서 구원의 생명의 모습을 친히 견디어 가게 하신다. 그리하여 성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 표현엔 인간의 본질, 곧 그의 근원과 성질과 운명으로 한 생명을 가지고 삶을 영위해 나타나고 있다. 이 말씀은 인간이 그 생명을 이어 받은 것이요 스스로 존재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생명을 소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성서로 보면 사람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생명이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 하는 자”로 창조된 것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으므로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신다고 한다 (창 2:9). 즉 에너지 ( Energy) 공급원을 두신 것이다.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의존해야 함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생명나무는 인간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다시 말하면 그 열매를 먹고 있는 한 죽지 않을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은 하등의 피조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성과 기능과 능력들, 곧 이성, 선택의 능력, 지능 등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동물들에 비하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주는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속성은 하나님의 뜻과 아름답게 이 땅에서도 성육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의 신성과 인간의 인성이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으로 위격의 일치라고 언급되어 온 삶에서 인격적 일치로 구주 예수 안에서 연합되었음을 믿게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삼위의 일치라고 언급 되어 온 인격적 일치(하나)로 예수 안에서 결합되어 두 본성이 인격적 일치로 그 정체로 이어오고 있음을 믿게 한다. 그리하여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는 성부와 인격적으로 긴밀하게 연합해 왔으며 그가 복음을 선언 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함에 유의하게 한다.
여기서 ‘성육신’은 본질상 하나님이고 하나님 (성부) 과 동등 하지만 조의 신분으로 나중에 하나님과의 그 관계는 하나님과의 자녀의 입장으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이를 관계하게 함에 유의한다. 여기서 이를 깨달아야 함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 중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여러 경향들이 있어 왔지만 이후의 신학에서 이를 바로 잡아 신학을 세우게 된 것은 칼케돈 공의회의에서 그 정의를 반영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일치가 그의 인성에 중요한 영향의 역할을 알아야 함을 정의하게 됨을 알게 한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