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을 회복하는 길(출 18:21~27)
2019/01/18 15: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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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이었지만 삶의 어려움도 있었고 박해를 받기도 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은총을 맛본 것이지 온실의 화초처럼 안락한 삶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모세였다.
모세의 안락한 삶은 나이 사십 세가 되었을 때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 나는 순간 끝이 난다. 그는 모래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미디안 광야에서 고달프기 이를데 없는 곳을 지나야만 했다.
갈 곳도 없고 반겨 줄 사람도 없는 곳 하루 종일 뜨거운 뙤약볕 아래 방황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미디안 광야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아무런 희망도 기댈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미디안 광야는 약속된 유배지가 아니며. 그 기한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10년, 20년을 기다려도 상황은 달라 질 가능성은 없었다.
가슴을 부풀게 하는 언질을 주기는커녕 바로 왕은 모세를 잡아 죽이려고 했다. 그는 이미 애굽의 왕자가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피가 흐르는 히브리인임을 만천하에 드러났다. 언제 미디안의 고통이 끝날 것인가? 그의 가슴의 막막함은 마치 광야의 막막함과 같았다.
이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오아시스를 준비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오아시스는 가정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광야의 오아스를 만나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모처럼 만난 나무 그늘에서 지친 몸을 쉬고 있을 때 그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십보라’ 그녀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그의 인생의 오아시스 이였다. 모세는 십보라를 따라 이드로의 집에 이르게 되었고 이드로는 그의 장인이 된다. 그들에게서 두 아들이 태어난다. 모세는 두 아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담은 신앙 고백적 이름을 붙여 준다. 큰 아들은 ‘게르솜’이었고 둘째 아들은 ‘엘리에셀’이다.
‘게르솜’이란 내가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으로 모세는 객이었고 나그네이다. 그가 비록 애굽 궁궐에 있기는 했지만 거기는 그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는 히브리인이었으므로 그는 처음부터 애굽 궁궐의 나그네였다. 그리고 그 이전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때부터 사실은 나그네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 자체가 객이 아니겠는가? ‘엘리에셀’ 이름은 ‘참으로 아름답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 준다. 첫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지은 모세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붙이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나그네 인생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기 때문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나그네에게 진정 도움을 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시다.
우리 존재가 객임을 잊지 말자. 그리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잊지 말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모세는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이웃에게 증거 한다. 인생 항로를 나그네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을 경험한 인생은 마땅히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것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게 하고 승리케 하는 길로 나아가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진을 친 이후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그의 처자와 함께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가던 도중 돌려보냈던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세를 찾아온다. 당시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게 되자 모세는 애굽에서 바로의 추격을 피해 도망쳐야만 했던 자신의 비참한 모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가운데서도 자신을 끝까지 돌봐주신 하나님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할 수 있었다. 이에 모세는 가족들을 장막 안으로 데리고 가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주도하신 가운데 보여주신 위대한 모든 행적들을 밝히고 그동안 자신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수많은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를 구원하신 일들을 말해 준다. 이에 감동한 이드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하며 하나님 보다 더 큰 이가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9-12)
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모습은 그리스도인의 참된 만남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모세가 이드로 앞에서 결코 세속적 가치 기준인 명예와 자신의 출세에 대해 자랑하지 않았다는 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오직 일상생활 속에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간증함으로써 이드로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교제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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