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라와 교회봉사의 3대 장로
2019/01/31 13:3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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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계승은 사명의 계승이며 사랑의 실천이다”
독립운동가 이명룡 장로·피납자 이경선 장로·선교사 이대영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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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문에서 3대 장로가 나는 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큰 복이다. 많은 가문이 헌신의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도 나라와 교회봉사의 아름다운 자취를 남긴 신앙의 명문가를 찾아 역사여행을 떠난다.
이명룡-이경선-이대영으로 이어지는 장로 가문의 역사는 특이하다. 독립운동가, 피납자,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이들이다.

독립운동가 이명룡 장로
이명룡 장로는 1873년 8월 2일, 평안북도 철산군 차련관면 유정리에서 태어났다. 6남매 중 독자인 그는 6년간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2살 때 부친상을 당하고 모친 슬하에서 6남매가 성장했다. 1885년에 김성련과 결혼하고 20세 때 정주로 이사한다.
1899년에 유상도의 전도로 예수를 믿기 시작하고 1902년 정주읍교회에서 노세영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젊은 이명룡은 정주군 상공회의소 소장에 피선될 정도로 사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1907년에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1940년 봄에는 일본 정부의 주선으로 지방사업가 130명 중 한 명으로 일본의 산업계를 시찰하였다.
1911년 10월에는 이른바 ‘데라우찌 총독 암살 음모사건’이라는 ‘105인 사건’에 연류되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고동법원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하루 2끼 먹기와 냉수마찰을 시작하였다.
이명룡은 1915년 8월 45세에 덕흥교회 장로로 장립 받는다. 그리하여 그는 신앙이나 사업에서 서북지방의 지도자로 일하게 된다. 1918년 12월 ‘윌슨 14개조 강화조건’이 보도되자 이승훈 장로와 양전백 목사를 만나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논하였다.
1919년 2월 15일에 이승훈과 상경하여 3.1운동 거사 사전 준비를 하였다.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그는 고당 조만식 장로의 물산장려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평북노회 회계 등 교계 일에도 헌신하였다.
1938년부터 45년까지 덕언면 덕성동 농장을 경영하며 목회일선에서 은퇴한 김병조 목사를 덕성동으로 이사 오게 하여 농토를 마련해주고 이웃에 살게 하였다.
해방이 되자 조만식 장로의 권유로 조선민주당 고문에 취임하였고, 7천석이나 되는 사재를 털어 평동(平東)중학교를 설립하였다.
1947년 4월 25일, 차남 이경선 장로가 공산당에 체포되어 행방이 묘연해지자 월남을 감행한다.
이 장로는 남한에서도 열심히 헌신하였다. 1949년 1월 24일 서울 인왕교회를 설립하였고, 수복 후에도 각종 애국단체의 회장과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56년 11월 12일 오전 4시 반, 충무로 자택에서 84세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었다. 11월 20일 중앙청 광장에서 사회장으로 엄수하였고, 1962년 3월 1일, 윤보선 대통령에 의해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다.

피납자 이경선 장로
아버지의 대를 이은 아름다운 역사가 계속된다. 2대 이경선 장로는 1899년 4월 21일, 평북 정주에서 이명룡 장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1년 선천 신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그해 10월에 일어난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아버지가 체포되고, 신성학교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1913년에 서울 경신중학교에 편입하고, 후에 YMCA 영문과와 사진과를 수료한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아버지 이명룡 장로는 민족대표 33인으로 체포되었고, 이경선, 이경화 형제는 시위에 참여하다가 경찰의 수배를 피해 중국으로 도피했다. 이경선은 중국에서 남경 금릉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귀국한다.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면서 교회 집사로 봉사하던 중 27세에 정주교회 장로로 장립받았다. 1926년 안창호의 권유로 ‘수양동우회’에 가입하였고, 1937년에는 ‘흥사단 사건’으로 연행되기도 하였다.
해방 후 공산당의 주일선거 반대운동을 전개하였고, 1946년에는 ‘정주학생의거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돼 시베리아로 유배당하여 생사를 알지 못하나 순교의 제물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소설가 선우휘는 ‘노다지’라는 소설에서 〈수인〉은 선우휘이며, 〈기욱〉은 이경선 장로의 큰 아들 이만영을 모델로 하여 소설화하였다. 선우휘와 이만영은 이웃에 살았고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 지명관 교수 등 이 장로의 제자들이 그를 추모하며 신앙의 아름다움을 흠모하고 있다.

선교사 이대영 장로
3대의 장로는 하나님의 큰 복이다. 이대영 장로는 평북 정주에서 이경선 장로의 차남으로 1925년에 출생했다.
기독교 신앙과 독립운동가의 가문이기에 철저한 신앙교육과 민족교육을 받았다. 영변 숭덕중학교를 거쳐 도쿄 동아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신의주 부청 재무과에 근무했고, 또 정주 사립신안학교 교사를 지냈다.
아버지 이경선 장로가 피납되자 1947년에 할아버지 이명룡 장로를 모시고 월남하여 군인, 공무원, 사업가로 활동하였다.
1979년에 안수집사가 되었고, 1982년에 장로 장립을 받았다. 교회봉사와 함께 노회, 총회 등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 1990년에는 통합측 함해노회장이 되었다.
그의 사역에서 특이한 것은 1992년 12월에 남태평양 팔라우섬에 선교사로 가서 한인장로교회를 설립하고, 교포선교와 중국인 및 원주민 선교사역을 한 일이다.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리는 선교사로 헌신한 것이 이 가문에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복이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명룡 장로로 시작되는 신앙의 계보는 남태평양 섬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신앙의 계승은 단순한 직분의 계승이 아니라 사명의 계승이며 사랑의 실천이다. 독립운동가의 가정에서 믿음의 꽃이 피워진 것은 놀라운 은혜이다.
우리도 신앙의 아름다운 계보를 형성하기 위해 오늘을 하나님의 소명의 날로 귀하게 사용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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