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4대 목사
2019/02/22 14:1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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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소록도서 한센병자를 위해 헌신
1대 김정복 목사·2대 김두영 목사·3대 김의석 목사·4대 김현철  김현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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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김의 삶이란 힘들고 어렵지만 그 열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한 양식을 준다. 믿음의 선진들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쳤고 이웃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았다.
이 땅에서 가장 힘들고 고달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에서 이들의 목자가 되어 섬김의 삶을 살아온 신앙의 가문이 있다. 3대 목사에 2대는 3명의 목사, 2명의 사모가 되어 모두 목회자로 헌신하였고, 3대는 젊은 부목사들이다..

소록도의 꿈
소록도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한센병 병자를 위한 국립 소록도 병원이 있고, 치우된 환자들을 위한 삶의 공동체가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슬픔의 눈물로 시작하여 감격의 찬송으로 끝나는 곳이다. 절망으로 이곳에 와서 그리스도를 만나 소망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기적의 섬’이다. 이곳에서 헌신한 목자들의 사역은 수십 권의 책에 기록하여도 부족하겠지만 우리는 두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김정복 목사와 김두영 목사가 그분들이다. 김정복 목사는 충남 출신으로 대한제국 군인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고, 귀국하여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와 전남 지방에서 목회하다가 해방 후 소록도교회 초대 목사로 부임하여 목회하다가 1950년 9월 6·25전쟁 때 순교의 제물이 된다(김정복 목사에 대한 연구는 김남식 지음, 김정복, 소록도의 순교자[서울: 도서출판 베다니, 2018]와 김남식의 논문들이 있다).
김두영 목사는 한국교회사의 숨겨진 인물이며 그의 사역의 특이성은 소록도 교회에 부임하여 32년 2개월을 헌신한 일이다. 또 그가 은퇴한 후 자녀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서 사역하였다. 필자는 그에 대한 전기를 쓰고 있다(김남식 지음, 김두영, 소록도의 목자). 그러니 김정복과 김두영을 통해 소록도의 신앙적 흐름을 정리하는 것이다.

신앙의 뿌리 그리고 헌신
이 가정의 이야기를 김두영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자. 이 가정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된 것은 김두영의 증조 할아버지부터이다. 이 분은 한국교회 초대교인 중의 한 분으로 전도에 열심이었다.
김두영은 평양 이천교회 김경호 장로의 장남으로 1917년 평양에서 태어난다. 김경호 장로는 ‘전도대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국을 누비며 전도하였고, 특히 개인전도에 열심이었다. 이러한 신앙의 흐름이 그의 후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김두영의 장인은 평양 숭실대학교 교학처장을 지낸 한창선이다. 그는 3·1운동에 참가하여 경찰에 체포되었고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의 그의 재판 판결문이 구 중앙청 지하 서고에서 발견되어 정부로부터 독립운동가로 훈장을 받았다.
이러한 신앙의 뿌리 속에서 김두영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신기할 정도의 일을 하였다. 그의 사역을 보면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30년 그의 나이 14세 때에 법수리교회 개척의 중심이 되었고 1933년 17세 때에 신우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19세에는 기독청년면려회 평양노회 연합회 서기가 되고「평양면려회보」를 발간한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여
김두영의 사역에서 기억할 것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그는 1937년에 일본에 유학하여 준대상업학교 졸업반에 편입한다. 1939년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다.
이 시기에 그는 남들이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한다. 기독교인 정치지도자들과 친교를 가졌고, 이 관계망을 통해 조선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한다.
김두영은 평양에 와서 증경총회장 김선두 목사를 모시고 도쿄에 가서 신사참배 반대를 위해 기독교 정치지도자들과 각료들을 만나 진정을 한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으나 김선두와 김두영의 이러한 운동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의 합법적 반대 모델로 불린다.
김두영은 도쿄에서 숭덕교회를 설립하고 유학생과 교포 전도에 진력한다. 대동아전쟁이 막바지에 들자 유학생에게도 징병령이 내려졌다. 1944년 4월 김두영은 육군 군속으로 평양병사구사령부에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헌신자의 길
해방이 되지 김두영은 평양 기독교 종합사무소 소장으로 북조선 건국준비위원회 대표로 정권인수식 사회를 맡을 정도로 사회활동을 하였다.
공산당의 박해가 심해지자 1947년 5월에 월남하여 활동하다가 1949년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53년에 졸업한다. 목사 안수를 받고 대구 영락교회 부목사로 한경직 목사를 돕는다. 그 후 소사중앙교회 목사와 전국 순회부흥목사로 헌신하다가 1962년 2월에 소록도 교회에 부임한다.
소록도교회 32년 2개월의 사역은 기적의 세월이다. 소록도 여덟교회를 공동으로 담임하여 ‘소록도의 목자’의 삶을 산다.
그는 단순히 설교하고 심방하는 목사가 아니었다. 그의 사역은 ‘전인구원’과 ‘연합목회’였다. 전인구원은 영혼구원, 육신구원, 경제구원, 사회구원, 교육구원이라는 다섯 영역으로 그의 사역이 압축된다.

대를 이은 헌신자들
김두영에게는 3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있는데 5남매가 모두가 목사와 사모가 되는 특별한 복을 받았다.
장남 김의석 목사는 소록도교회 부목사로 헌신했고, 현재 뉴질랜드에서 교포선교를 하고 있다. 차남 중석 목사는 서울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총신대음악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사랑교회 원로목사와 북한교회세우기연합 사무총장으로 헌신하고 있다. 3남 승석 목사는 충만교회 담임목사로 갈보리선교회 회장으로 동남아지역 선교에 열심이다.
장녀 김명자 사모는 중소기업중앙회 관리이사 출신인 이상호 강도사의 부인으로 헌신하였고, 차녀 김명신 사모는 고 박창훈 목사의 부인으로 소록도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필리핀 마닐라 사마리아 교회 목사로 헌신하였다. 박창훈 목사는 필리핀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사역하다가 순직하였다.
신앙의 대는 4대 목사로 이어진다. 김승석 목사의 두 아들이 목사가 되어 헌신하고 있다. 김현철 목사는 충만교회 부목사와 갈보리선교회 총무로, 김현성 목사는 수원 화산교회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
김두영의 조카 김요석 목사는 전남의 한센병 치유자 정착촌인 영호교회에 시무하다가 지금 몽골선교사로 헌신하고 있다.
이 가문의 흐름은 소록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섬김과 선교라는 두 단어가 이 가정의 대표적 화두이다. 어린 시절을 소록도에서 보낸 자녀들은 모두가 목회자 사모가 되었고, 필리핀, 몽골, 동남아 북산선교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신앙은 헌신을 통해 계승된다. 교회 권력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사역은 오늘의 우리에게 섬김이 무엇이며 그 결과가 어떤한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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