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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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개방 경제로 이끈 등소평은 모택동과 달리 실용주의자였다. 그의 사상을 잘 표현하는 말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이른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이와 같은 정책은 사마리아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 방향을 생각나게 한다.
사마리아인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남북왕조시대에 존재했던 북왕국 이스라엘의 후손들이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경에 앗시리아에 멸망당했다. 이후 남왕국 유다에서 정체성을 계승한 유대인들은 정체성 상실을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차별화하고 무시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사마리아 문자를 사용한 아람어를 썼는데, 이는 초기 히브리 문자로부터 이어져 온 문자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로부터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복음 사역을 해 나가셨는데, 특히 사마리아 지역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가 많았다. 강도를 만난 유대인을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렇고, 다섯 남편을 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비유를 말씀하신 경우가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로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리하셨던 것 같다. 이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하나님 나라의 언어만을 사용하신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인생을 특별하게 산 여인들을 올린 것도 ‘흑묘백묘(黑猫白猫)’를 생각나게 한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맺어 베레스와 세라로 이어지게 하였으며, 라합은 여리고성 사람이면서도 그들 편에 서지 않아 보아스를 낳았으며, 룻은 이방 여자였지만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고, 우리야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다윗의 아내가 되어 솔로몬을 낳았다(<마태복음> 1:3-6). 이는 유대인의 관습을 어긴 죄 많은 여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를 수 있다는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과 화목해져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새신자를 전도할 때에는 새신자가 믿음이 부족하다며 경계를 하기보다는,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 얼마든지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일 야고보와 요한이 기독교인을 한때 핍박하였었다는 이유로 바울을 차별을 하였다면,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고 세계 선교가 이루어지는 쾌거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사도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시켜야 할 것인가, 이방인과 식사를 같이 할 것인가, 이방인과 결혼해도 되는가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리하여 A.D. 49년에 예루살렘에 모여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 율법을 적용시킬 것인지를 논의하였다(사도 15:1-35 참조).
여기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지 않는 등 몇 가지 외에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의함으로써 그들이 모세 율법에 구속되지 않음을 명백히 하였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교회의 주요 결정에 성령께서 도우신다는 점과 이방계·유대계 양 그리스도인들 간의 일치를 도모하자는 등의 의견을 도출하였는데, 이는 이방인들에게 사역하던 바울의 의견이 많이 수용된 것이었다.
이 회의 이후 이방인이나 여자나 노예들도 공동체 식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기독교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갔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오심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등이 공관 복음과 바울 서신 등을 통해 정립되어 갔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새신자들을 전도할 때에 너무 온실 속에서 착하고 온유함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순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있다. 성직자들이 교인들에게 진실과 선함만을 가르친다면, 신자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따로 행동하는 이중성을 가지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은 교인들에게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만 선데이 교인으로 머무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교회 안에서만 볼 수 있다는 편협한 기독교 세계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언행을 하게 하는 것은 AI 시대에 매우 필수적인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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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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