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흥사역과 문학과 병원 원목의 3대 목사
2019/03/07 15:3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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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부흥운동사의 거목 박용묵 목사 가정
1대 박용묵·2대 재천, 재섭, 상진·3대 양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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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가정에는 하나의 전통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가풍(家風)이라고 부른다. 이런 가풍이 그 가문의 자랑이 되고, 후손들에게 하나의 지침을 제공한다.
신앙의 명문가들은 독특한 전통이 있다. 마치 종가집의 음식맛처럼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향기가 있다. 부흥사역의 중심인물이고 거기에 문학적 향기까지 더한 한 가문을 찾는다.

목회와 부흥사역의 헌신자
목회자로서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이끌어 온 박용묵 목사는 1918년 3월 경북 청도에서 부친 박정범 영수와 모친 이동녕 집사의 6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소학교를 중퇴한 후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장로교총회가 실시하던 성경통신과 신·구약과를 마쳤고 이듬 해 총회교육부의 교사 양성과를 졸업하였다.
만주로 건너가 길림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재학 중인 1937년에 북창교회를 개척 시무하다가 1939년에 길림신학교를 졸업했다. 그해 의성 양지교회 이분례와 결혼한다.
만주 북창교회를 시무하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고노하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공부하여 오사카 외국어학교 영어과를 졸업한다.
광복 후 귀국하여 면서기, 순회강사 등을 하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메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목회자로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1946년 경북 경산군 와촌면 덕촌과 박사 두 곳의 교회에서 전도사를 시작으로 한 평생을 목회자의 길을 간다. 1947년 경북노회에서 목사 장립을 받고 박사교회 위임목사로 시무하다가 1951년 대구 문화교회에서 5년, 1955년부터는 대구 동신교회에서 8년, 1963년부터 영등포 대길교회에서 20년 등 40여 년간 목회사역에 헌신하였다.
그의 목회를 살펴보면 시무하는 교회마다 예배당을 건축한다. 문화교회와 동신교회에서 예배당을 신축하였고, 대길교회에서는 예배당 건축을 두 번이나 하였다. 이것은 그의 목회사역이 섬김의 리더십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0만 구령’의 소명
박용묵 목사의 사역에서 중요한 세 축을 들라면 목회, 부흥운동, 저술사역으로 집약할 수 있다.
박 목사는 ‘10만 구령’의 소명을 받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십자가 신앙이며 사랑이었다. 지금도 그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평생에 1,000회 이상의 부흥회를 인도하며 힘있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였다. 1969년 9월 어느 토요일, 신현균 목사는 대구부흥집회를 인도하고 귀경하는 열차에서 부산집회를 마치고 귀경하는 조용기 목사를, 이어서 대전집회를 마치고 상경하는 김동일 목사와 오관석 목사를 만난다.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 네 목사는 전국적으로 부흥집회를 다니는 부흥사들이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부흥운동과 친교를 가지자는 데 뜻을 같이 하고, 1970년 2월 15일, 17명의 부흥사들이 영천교회에 모여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를 조직한다. 이 모임에서 박용묵 목사가 회장으로 추대된다. 부회장에는 임영재 목사, 조용기 목사, 총무에 신현균 목사가 선임되었다. 여기서 박용묵 목사의 부흥사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리더로서 목회와 부흥사역의 균형을 이루며 모범적 교회로 성장하는 일에 견인차 구실을 하였다. 한국교회부흥운동사 연구에서 박용묵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문서사역의 향기
박용묵은 목사만이 아니라 ‘시조시인’으로 불린다. 사랑의 목자요 뜨거운 부흥사의 가슴에서 솟아난 시조들은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의 파도를 일으킨다.
그의 대표 시조집 「신애보」(1952년 초판)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신앙의 고백을 하게 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그의 대표작 ‘임타령’은 이렇게 노래한다. ‘임의고통 비교하면 고통 될 것 없사오나/ 연약하온 이 내몸엔 이것 또한 중하오니 / 임의 품에 나를 안고 눈물 씻어 주사이다// 먹는 것도 임을 위해 입는 것도 임을 위해/ 임을 위해 사옵다가 임을 위해 죽으리니/ 사랑하는 임이시여 나를 도와 주사이다// 이것은 주님을 향한 그의 고백이요 삶의 절규이다.
박용묵의 호는 ‘영파(靈波)’이다. 즉 ‘영적 파도’인데, 그의 메시지가 그렇게 전해지기를 열망하는 호소이다.
박용묵은 평생에 28권을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설교집, 시조집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특별히 효(孝)에 대한 설교는 지금도 감동을 주고 있다.

인도 선교의 비젼
박용묵이 대길교회에 시무하면서 인도선교의 위대한 걸음을 걷는다. 그의 선교전략은 선교사를 먼저 파송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을 한국에 데려와 신학교육을 시키고 목사로 안수하여 인도 선교사로 파송하는 것이다.
인도 청년 노수길(한국 이름)이 한국에 와서 대길교회 소속으로 총신대신대원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인도 선교사로 파송된다. 노수길의 동생이 이를 따라 하였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인도에 ‘코인신학교’(Korea-India 의미)가 설립되어 지금도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박용묵은 인도선교를 유언으로 남겼다. 그 유언에 따라 그의 자녀들이 ‘영파선교회’를 조직하고 인도선교를 계속하고 있다.

대를 이은 7자녀들
박용묵에게는 6남1녀의 자녀가 있다. 모두들 자신의 영역에서 충성하고 있다. 7명의 자녀는 목사 3, 장로 2, 집사 1, 권사 1명으로 신앙의 대를 이어 헌신한다.
장남 박재천 목사(한국문인교회 시무)는 오랫동안 교목으로 청소년교육을 하였고, 시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다.
차남 재형 장로(명지병원)는 서울의대교수를 역임하였고, 대길교회 장로로 믿음의 터를 지키고 있다.
장녀 성순 권사는 7남매 중 유일한 딸로 교회 반주자로 헌신하고 있고, 삼남 재열 집사는 여행업계의 주요 인물이다. 사남 재섭 목사(기쁨의 교회)는 부친의 뜻을 이어 사명자의 길을 가고 있다.
오남 상은 장로(안양 샘병원장)와 육남 상진 목사(장신대 대학원장)은 쌍둥이다. 한 사람은 의사, 한 사람은 목사가 되어 이 땅에 생명사역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오남 박상은 박사가 아버지의 믿음의 유산을 글로 엮었다. 「박용묵 목사의 10만 명 전도의 꿈」(국민일보, 2011)은 아버지의 복음 열정을 아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쓴 책이다.

3대 목사의 가정
장남 박재천 목사의 장남 양현 목사(샘병원 원목실)가 3대 목사의 대를 이었다.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병원 원목으로 사역하고 있다.
3대는 양현 목사를 비롯하여 총 16명이고 이들의 자녀들이 ‘5대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를 이은 신앙 즉 계대신앙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여기에 더하여 대를 이은 헌신은 축복의 명문가를 만든다.
자식을 위한 눈물의 기도는 감사의 열매를 풍성하게 한다. 목회자, 부흥사, 시조시인의 사역이 그의 후손들을 통해 귀하게 열매를 맺고 있으니 오직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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